문화재/보물

보물 제1578호_전주 경기전 정전

기리여원 2021. 3. 22. 13:36
728x90

보물 제1578호 _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수   량 : 6동

지정일 : 2008.12.01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번지

 

사적 제339호의 전주 경기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여 봉안하면서(태조영정 보물 931호)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외3출목, 내3출목이고, 5량 구조의 맞배, 겹처마 지붕이다. 살미의 쇠서가 발달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초각 처리되어 안정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 배례청은 이익공을 가진 익공계 양식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배례청의 박공면은 정전의 정면 모습이 된다. 정전과 배례청은 화강암 원형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의 5.8m나 되는 2개의 고주는 종보를 직접 받고 있으며, 양측면의 기둥도 대들보를 받는 고주로 되어 측부재 구조가 간결하고 견고하게 짜여있다. 포작의 내부 살미 조각과 보아지 및 종도리를 받는 파련 대공의 섬세한 조각과 우물천정 단청 등의 의장이 화려한 편으로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권위성을 볼 수 있다.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며 견고하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이 잘 전수된 안정된 구조와 부재의 조형 비례는 건축적 품위를 돋보여준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내신문 내의 신로 및 향로의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의 문화재 가치가 인정된다.

 

전주 경기전 정전  표지판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일자집으로 어칸 전면에 1칸의 각(閣)을 덧대어 지은 정자각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전 좌우에는 각각 2칸의 익랑과 동서에는 4칸의 월랑이 배치되었다.

정자각 정면 기와지붕 아래 붉은 널빤지에는 화재를 막아 준다는 의미로 거북이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드므

 

드므는 물을 담아서 화재에 대비하는 것으로 정전 뜰아래 좌우에 6개, 별전 뜰아래 2개, 제기고 앞에 2개를 두었다. 

겨울에는 소금을 넣어 물이 어는 것을 방지했다.

 

태조 이성계 어진, 모사품

 

 

태조이성계 어진, 모사품

 

태조어진은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의 전신상이다.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곧바르고 귀가 아주 컸다고 한다.

전주는 태조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 10) 태조어진을 전주에 봉안하였으며, 1872년(고종 9) 구본이 낡아 조중묵을 비롯해 10인의 화사가 새로 모사해 경기전에 모셨다.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에서 바라본 내신문(內神門)

 

내신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구조이다. 내신문 좌우에는 지붕이 한 단 낮은 첨각이 각각 2칸씩 달려 있고, 내신문과 첨각사이에는 작은 문을 시설하여 어진을 돌보는 관리들이 출입하였다.

 

전주 경기전 정전 (全州 慶基殿 正殿) 에서 바라본 내신문(內神門)

 

2021.03.20. 전주 경기전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