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189-2호 _ 박문수 초상(2006) (朴文秀 肖像(2006)), 분무공신 반신상
수 량 : 제기 및 초상 1점
지정일 : 2006.12.29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구
시 대 : 18세기 중반
흔히 조선시대 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靈城君 朴文秀(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인 1728년의 奮武功臣 錄勳 때 奮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功臣像으로 그려진 全身像과 半身像이 天安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 2점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1728년의 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奮武功臣像과 달리, 1品官이 착용하는 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의 奮武功臣像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서 새로 그린 초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같은 奮武功臣이었던 趙顯命(1690-1752)이 1751년에 생존한 奮武功臣 14명의 半身像을 그려 勳府畵像帖을 만든 뒤 紀功閣에 갈무리했는데, 이때 豊原君 趙顯命 자신과 靈城君 朴文秀, 彦城君 金重萬, 仁平君 李普赫은 초상화를 새로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舊本을 移摹했다고 한 『歸鹿集』 卷18 「勳府畵像帖記」의 기록이다. 왜냐하면 1751년에는 박문수가 61세의 1品官으로서 이 半身像의 圖像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조선시대 肖像畵史와 조선시대 功臣圖像史에서 매우 각별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Ο 규격(세로x가로) : 121.4 x 49.7 cm(전체), 40.2 x 28.2cm(그림), 41.2 x 28.2cm(발문)
박문수 초상(2006) (朴文秀 肖像(2006)), 분무공신 반신상 _ 작가모름(作家未詳) 1750년(영조 26), 비단에 색(그림), 종이에 먹(글), 개인 소장
소중히 전해진 초상화로 박문수를 기억하다.
박문수의 건의로 분무공신상이 1750년 다시 제작되었습니다.
이때 그려진 초상화는 상반신만 표현된 반신상입니다. 완성된 초상화 중 한 부는 첩으로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나머지 한 부는 다른 분무공신 반신상과 함께 첩으로 꾸며 충훈부에 보관했습니다. 박문수 38세 초상에 비해 60세 초상에서는 수염이 희어지고 주름이 깊어졌습니다. 소중히 보관된 두 초상화로 그의 달라진 모습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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