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경국사에서 보유한 문화재
1. 보물 제747호 _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8호 _ 경국사 목관음보살좌상
3.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0호 _ 경국사 지장시왕도
4.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1호 _ 경국사 감로도
5.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2호 _ 경국사 팔상도
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3호 _ 경국사 신중도
7.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4호 _ 경국사 괘불도
경국사 극락보전
경국사
경국사는 1325년에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창건하였는데, 삼각산의 청봉(靑峰) 아래 있다고 하여 청암사(靑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주인 자정율사는 계율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화(法華), 유식(唯識)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계율과 법화경(法華經) 관음신앙을 숭상하던 사찰이었다. 그리고 1349년 태고보우(太古普愚)국사가 중국에 가서 석옥청공(石屋淸珙)스님으로부터 법릉 전해 받고 귀국하여 경국사에서 공민왕의 청을 받아 금란가사와 주장자(柱杖子)를 하사받고 국사가 되었다. 1545년, 명종조(明宗朝) 때 왕모(王母)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사 하면서 국가의 경사스러움을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慶國寺)로 개칭하였다. 그 후 1698년에는 연화승성(蓮華昇城)스님이 절을 중수하고 천테성전을 세웠다. 천태성전은 독성을 모신 전각으로 이때 기록한 <천태성전샹량문>이 지금도 전한다. 전 대통령 이승만도 경국사에 주석하던 보경(寶鏡)스님의 인품에 감화되어 전 닉슨 부통령과 함께 참배한 일화도 전한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는 보경 금어(金魚) 큰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 소임을 맡은 지관(智冠)대종사<전 조계종 총무원장>가 경국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발바꿈시켰으며, 2005년에 한국불교의 율풍(律風) 진작에 헌신했던 자운(慈雲)대율사의 계주원명사리탑(戒珠圓明舍利塔)도 이곳에 세워졌다.
좌측 극락교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경국사 일주문이 보입니다.
삼각산 경국사 일주문
삼각산 경국사 일주문 편액
용모습을 형상화한 일주문 기둥
극락교가설기념비(極樂橋架設記念碑)
한적해서 걷기가 편안합니다.
자운대율사(慈雲大律師 1911~1992)의 계주원명사리탑(戒珠圓明舍利塔)
불기2549년(2005) 9월 문인 智冠 立
자운대율사계주원명사리탑(慈雲大律師戒珠圓明舍利塔)
자운(慈雲.1911~1992) 대율사(大律師)의 원명사리탑(圓明舍利塔)
2년 간의 준비와 제작 끝에 완성된 사리탑비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계단형 부도탑으로 조성됐으며, 스님의 사리 3과와 유골 등이 안치도었으며, 근대 한국불교 율맥(律脈)을 이어가고 있는 자운 대율사의 전계제자들의 면면을 새겨넣은 것이 특징이다.
1934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율사 경념(敬念) 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한 자운 스님은 해인사에서 율장 연구에 몰두했으며, 용성선원과 김용사, 통도사 등에서 정진했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해인학원 이사장,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 동국역경원장 등의 소임을 두루 거쳤다
자운대율사계주원명사리탑(慈雲大律師戒珠圓明舍利塔)
가람수호대덕종사김보경기념비(伽藍守護大德宗師金寶鏡紀念碑)
가람수호에 온 힘을 기울인 보경당 보현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보경당 보현대종사행적비(寶鏡堂 普賢大宗師行蹟碑)
이 비문은 가산지관대종사(伽山智冠大宗師)께서 지으시고 하병우(河柄祐)씨가 써서 1992년에 세웠습니다.
보경당 보현대종사(寶鏡堂 普賢大宗師 1890~1979)
자운대율사(慈雲大律師 1911~1992)
지관 대종사(智冠,大宗師 1932~2012)
보경당대종사지탑(寶鏡堂大宗師之塔)
자운대율사율풍진작계주원명탑비(慈雲大律師律風振作戒珠圓明塔碑)
삼각산경국사사적비(三角山慶國寺事蹟碑)
불교대사림편찬발원문서원비(佛敎大辭林編纂發願文誓願碑)
감로수 약수터 위의 보살 삼존상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우측에 스님들이 공부하는 만월당(滿月堂)이 나옵니다.
만월당(滿月堂)
만월당(滿月堂)
경국사 범종각(梵鐘閣)
경국사 범종각(梵鐘閣)
경국사 관음성전(觀音聖殿)
'ㄷ'자로 이루어진 정면 8칸의 건물로 1842년 한국불교 계율의 중흥주인 대은(大隱) 낭오(朗旿)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전힌다
성북구에서 아름다운나무로 지정된 보리수나무
관음성전에 걸린 경국사(慶國寺) 편액
이 경국사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경국사를 방문하고 쓴 글씨입니다
경국사의 편액중에서 이승만 글씨 : 경국사 , 삼성보전 편액
경국사 화엄회(華嚴會) 편액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경국사의 편액중 해강 김규진 글씨는 다로경권, 화엄회, 범화회, 영산전편액
경국사 관음성전(觀音聖殿)
관음성전(觀音聖殿) 편액
송천(松泉) 정하건(鄭夏建) 선생의 글씨임.
법화회(法華會) 편액.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8호 _ 경국사 목관음보살좌상 (慶國寺 木 觀音菩薩坐像)
지정일 : 2007.12.27
시 대 : 조선시대
이 불상은 1703년(강희 42년) 청신(淸信)이 화주가 되어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서 조성되어 도갑사 견성암에 봉안되었던 관세음보살좌상으로, 현재는 서울 경국사 법당 향우측 벽에 봉안되어 있다. 전체높이가 60cm에 달하는 중형의 보살상으로서,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발원기에 의하면 색난(色難)을 수조각승(首彫刻僧), 순경(順瓊)을 부조각승으로 하여 행원(幸垣), 대원(碓遠), 일기(一機), 추☐(秋☐), 대유(大裕), ☐척(☐陟) 등이 함께 조성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두부(頭部)가 큰 편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장식 등이 잘 남아있다. 정상부에는 높고 길죽한 보계가 표현되었으며 이마부분에는 빗으로 빗은 듯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표현되었고, 보발은 귀의 중간부분을 감싸고 흘러내리다가 어깨 위에서 세 가닥으로 갈라져서 팔뚝 위로 흘러내렸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지만 턱 부분에 살이 올라 부드러워 보인다. 미간에는 백호가 선명하며, 활형[弓弧]의 가는 눈썹과 약간 위로 치켜뜬 긴 눈, 오똑한 콧날, 꾹 다문 얇은 입술 등은 조선후기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신체는 안정감있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편으로, 어깨 폭이 넓지 않아 아담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며 결가부좌한 무릎 폭도 적당하여 안정감을 준다. 양 어깨에는 법의가 걸쳐져 있는데, 법의는 목 뒷부분이 약간 접혀있으며 왼쪽의 법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가리고 어깨에서부터 무릎부분까지 내려오면서 무릎 위에 놓인 왼손을 손목부분까지 완전히 덮고 있으며, 오른쪽 법의는 어깨를 덮은 뒤 오른쪽 팔꿈치 아래로 하여 배 부근으로 내려가 왼쪽에서 내려온 법의 안쪽으로 여며진 모습이다. 이와 같은 착의법은 넓게 트인 가슴, 수평 또는 연꽃형의 군의 표현과 함께 조선후기 불상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올려 첫째와 셋째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왼손은 왼쪽 무릎에 대어 길죽한 정병을 잡고 있다. 한편 좌세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오른쪽 발이 완전하게 드러나 있으며, 무릎 앞쪽으로는 옷자락이 물결치듯이 좌우로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보관은 장식과 관대 등이 잘 남아있다. 영락장식과 화염보주 등으로 화려하면서도 치밀하게 장식된 보관에는 아미타화불은 표현되지 않았다. 특히 귀 옆으로 율동감있게 뻗어 내린 관대자락은 강렬하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 보살상은 조선후기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장인 색난(色難)이 1703년에 조성한 보살좌상으로, 신체에 비하여 다소 큰 듯한 얼굴이라든가 안정감있는 좌세, 오똑한 코, 수평으로 가로지른 군의의 표현, 단정한 결가부좌의 자세 등이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17세기 목조보살상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8호 _ 경국사 목관음보살좌상 (慶國寺 木 觀音菩薩坐像)
금강반야대 앞에 위치한 경국사 삼층석탑
금강반야대(金剛般若臺)
지관대종사께서 주석하시던 무우정사(無憂精舍) 금강반야대(金剛般若臺)
다로경권(茶爐經卷)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다로경권(茶爐經卷)이란 '차를 달이는 화로와 경서가 있는 담백한 정취'를 뜻함.
균제실
금강반야대 우측에 있는 스님의 요사채. 均提는 불교고사에 나오는 사람 이름입니다
경국사 삼성보전(三聖寶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0호 _ 경국사 지장시왕도 (慶國寺 地藏十王圖)
지정일 : 2008.05.01
시 대 : 조선시대
불화는 1870년에 경선 응석(慶船 應釋)과 봉감(奉鑑),자한(自閒), 체훈(軆訓)이 그린 개운사 지장시왕도를 초본으로 하여 혜산축연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혜산축연(惠山 竺演)은 19세기 후반 ~ 20세기 전반 강원도와 경기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으로 금강산의 신계사, 유점사를 비롯한 강원도 일대의 사찰들과 흥천사, 봉림사 등 경기지역 사찰의 불화를 많이 조성한 화승이다. 그는 서울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불화를 제작하여 현재 서울에서 조성한 작품은 20여 점이 남아있는데, 그중 1887년 경국사 불화 제작시에는 수화사(首畵師)로 활동하면서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 시기에는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음영법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듯 전통적인 수법의 양식이 보여진다. 특히 이 불화는 선악동자를 함께 그린 지장시왕도 형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유난히 가늘고 긴 눈과 아주 작은 입 등 얼굴 한 가운데로 몰려있는 이목구비라든가 놀란 듯한 동그란 눈동자와 좁은 미간, 눈 주위와 코, 뺨 부분에 음영을 표현하여 얼굴의 골격을 강조한 점은 다른 지역의 불화와 구별되는 서울경기지역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삼성보전 건물의 우측에 모셔진 지장시왕도
삼성보전(三聖寶殿) 편액
우남 이승만 대통령 글씨임.
경국사 극락보전
경국사 극락보전 편액
극락보전 후면 위에 또 다른 극락보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보물 제748호 _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서울 慶國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지정일 : 1983.05.07
시 대 : 조선시대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서울 慶國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목각탱으로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모두 13구의 불상과 보살이 있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커다란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대좌(臺座) 위에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 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하고,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서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아래위의 너비가 같은 조선시대 특유의 형식이다. 불꽃무늬가 위로 솟아서 뻗쳐있고 그 안에 작은 부처들이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 아미타 8대보살이 있고, 그 밑 좌우에 사천왕 중 증장천과 지국천이 있다. 8대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두꺼운 옷을 입고 연꽃을 든 채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다. 본존과 같은 높이에 보살이 서 있고 바깥 좌우에는 나한상이 1구씩 서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양감이 절제되어 평담한 미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 가운데 하나로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2호 _ 경국사 팔상도 (慶國寺 八相圖)
지정일 : 2008.05.01
시 대 : 조선시대
이 불화는 1887년 상궁들의 시주로 19세기말 서울, 경기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보암 긍법(普庵 亘法)을 비롯하여 금운 순민(錦雲 洵玟), 봉규(奉奎), 종현(宗現) 등이 그린 팔상도로 팔상의 각 장면 중에서 주요한 장면만을 부각시켜 그린 그림이다. 각 相의 내용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구성이 안정되어 있고 청색의 사용을 자제함으로서 격조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서울·경기지역 화승의 새로운 도상과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3호 _ 경국사 신중도 (慶國寺 神衆圖)
지정일 : 2008.05.01
시 대 : 조선시대
이 불화는 1887년에 혜산 축연과 허곡 긍순이 함께 조성한 신중도로서 상궁들의 시주로 조성되었다. 천부중과 천룡팔부를 한 폭에 묘사한 형식이라든가 산신과 조왕신이 위태천의 협시로 등장하는 점, 주악천녀의 등장 등은 전형적인 19세기 신중탱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존상의 세밀한 표현과 균형을 이루는 구성과 더불어 화사(畵師)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경국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 편액
명부전(冥府殿)편액은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선생 글씨
철조관음보살상(鐵造觀音菩薩像)
경국사 영산전(靈山殿)
영산전(靈山殿) 편액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과 영산회상도 후불탱화
산신각(山神閣)
극락보전 뒷편 경사면에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산신탱화
산신상 뒤의 산신탱은 1980년 덕문(德文) 스님이 조성
천태성전(天台聖殿)
이 성전은 영산전 윗편 산신각의 오른쪽(건물중심)에 위치하여 가장 윗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1693년(숙종 19)에 연화(蓮華)스님이 처음 세웠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근년에 중수한 듯합니다.
여기는 독성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으로 흔히 독성각(獨聖閣)이라 합니다. 혹은 독성인 나반존자(那畔尊者)가 남인도의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수행하여 깨친 성자를 모신 전각이라 하여 천태각(天台閣)이라고도 하는데 경국사에서는 천태성전(天台聖殿)이라 하여 전각 의 격을 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사찰에서는 산신, 독성, 칠성을 함께 모셔 삼성각(三聖閣)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산신각과 천태성전은 있는데 칠성각은 어디 있나 의문이시겠지만 칠성의 주불인 치성광여래는 극락보전 옆 삼성보전(三聖寶殿)에 모시고 있습니다.
독성 나반존자(獨聖 那畔尊者).
나반존자상 뒤의 독성탱은 1980년 덕문(德文) 스님이 조성함.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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