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화령옹주(和寧翁主) 태실

기리여원 2023. 3. 12. 14:53

화령옹주 [1752 (영조 28) ~ 1821(순조 21) 〕 태실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6-1번지, 예산대흥동헌내


癸酉 三月 初二日 戌時 生 翁主 阿只氏 胎室 乾隆 十八年 五月 十三日 辰時 葬 (계유 3월 초이일 술시 생 옹주 아지씨 태실 건륭 18년 5월 13일 진시 장)

태실은 왕세자나 왕손, 대군, 공주, 옹주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명산에 탯줄을 보관했던 곳이며 왕기에서는 이를 법으로 정했다. 이 태실은 조선 21대 영조대왕의 11녀 화령옹주의 태실로 화령옹주는 영조와 숙의 문씨 소생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의 조카 며느리가 된다. 정조 즉위 직후 어머니 숙의 문씨의 죄와 연좌되어 대신들이 화령옹주를 한성 밖으로 쫓아내 평민으로 강등시킬 것을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정조는 화령옹주가 너무 어려 죄가 없다며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태실은 왕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태실을 파괴하는 것은 곧 왕가의 상징물을 파괴시킨다는 의미였다.
화령옹주 태실은 일제시대에 이왕직이 친일파를 시켜 파괴시켰으며 안에 있던 도자기는 일본인이 가져갔다.
현재 예산군에는 현종, 헌종, 화령옹주, 숙종의 3남 연령군 등 4개의 태봉이 있다.

 

* 태봉 : 태실이 묻혀 있는 방향이 있는 산

 

화령옹주 태실비 전면

 

계유년(癸酉, 1753) 3월 초 2일 술시(戌時)에 태어난 옹주아기씨의 태를 건륭18(1753) 513일 진시(辰時)에 묻다(癸酉三月初二日戌時生翁主阿只氏胎, 乾隆十八年五月十三日辰時藏).’이다.

 

 

화령옹주(和寧翁主)

 

1753(영조 29) 32, 영조(英祖)와 숙의 문씨(淑儀 文氏)의 첫째딸로 태어났다.

 

화령옹주는 1764(영조 40) 음력 1016, 12세의 나이로 심정지의 아들 심능건과의 혼인이 결정되었다. 이때 심능건은 청성위에 봉해졌다. 옹주와 심능건은 이 해 음력 1220일 가례를 치렀다.

 

한편 화령옹주의 생모 숙의 문씨는 정조 즉위 직후 사도세자를 무고한 것 등으로 인해 사사되었다. 그러나 문씨의 두 딸은 여러 대신들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비호 하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작위도 모두 삭탈되지 않았다.

 

한편 1781(정조 5) 음력 윤525일에는 남편 심능건이 숙의 문씨의 생전 집을 멋대로 팔고 철거하는 바람에 삭직되었다.

화령옹주 태실비 후면

 

2023.03.11, 예산 대흥동헌 및 아문

전시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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