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문화재자료 9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_함포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 _ 함포재사 (咸浦齋舍) 수 량 : 4동 지정일 : 2003.12.1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맛질길 101 (제곡리) 시 대 : 1772년 전후로 추정 소유자(소유단체) : 제곡안동권씨함포문중 안동권씨 제곡 입향조(入鄕祖)인 야옹 권의(野翁 權檥, 1475-1558)와 심언(審言, 1502-1574), 시(時, 1552-1612)․ 욱(旭 1556-1612)․ 담(曇, 1558-1631)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사로, 건립년대는 망와(望瓦)의 명문에 나타난 건륭(乾隆)37년 임진년(1772)을 전후한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현재의 재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듭 하여 초창(初創) 당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이 지역 재사건물의 민속자료적 ..

정윤목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설학원, 예천 삼강 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4호 _ 삼강강당 (三江講堂) 수 량 : 2동 지정일 : 1988.09.23 소재지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53-14 (삼강리)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삼강마을 동쪽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이 강당은 앞쪽으로 둥근기둥을 세우고 옆면과 뒤쪽으로는 네모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가운데에 개방된 구조의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가서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올 때 베껴온 것이다. 경내에는 자연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8호_예천 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_ 예천향교 (醴泉鄕校) 수 량 : 4동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예천읍 백전리 199-1번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이다. 한국전쟁 때 기록을 분실하여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7년(1398) 서본리에 처음 지었고 태종 18년(141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으로 보인다.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건축 당시의 여러 건물은 불타 없어졌다. 현재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대문 격인 외삼문과 음식을 준비하는 곳인 주사가 남아 있다. 대지를 3단으로 나누어 앞면에는 교육 공간을 두고 뒤편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6호_예천 삼수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6호 _ 예천 삼수정 (醴泉 三樹亭)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2005.06.20 소 재 지 : 경상북도 예천군 청곡길 67-30 (풍양면, 삼수정(재실)) 소유자(소유단체) : 동래정씨판서공파종중 삼수정은 낙동강이 굽이도는 연안 마을 등성이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초창은 1420년대이나 1636년에 폐하였다가 다시 중건하였다. 1827년 경상감사(慶尙監司)로 부임한 정기선(鄭基善)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후 세 차례 이건하였으나 1909년에 구기(舊基)에 다시 돌아와 중건되었다. 또한 옛 모습을 비교적 잘 지니고 있으며, 가운데 마루방을 둔 평면형식은 아주 드문 예로 희소가치가 크다. 예천 삼수정 표지판 예천 삼수정 전경 보호수인 250년 된 소나무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7호_예천 향석리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7호 _ 예천 향석리 석조여래좌상 (醴泉鄕石里石造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190-2번지 시 대 : 고려 전기 추정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1914년 보호각을 세우고 보광전이라 이름지어 옮겨 놓은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말 죽산 부원군이었던 김원발이 마을에서 분쟁이 자주 일어나자 지리적 영향이라 믿고 부처님의 자비로 막아 보려는 의도에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풍만한 둥근 얼굴에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코는 떨어져 나간 것을 보수하였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돌려졌는데 현재는 시멘트로 붙여놓았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화려한 옷주름은 무릎까지 덮여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1호_예천 승본리 석불입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351호 _ 예천 승본리 석불입상 (醴泉 繩本里 石佛立像) 수 량 : 1軀 지정일 : 1998.04.13 소재지 : 경북 예천군 보문면 승본리 산79번지 시 대 : 신라말 ~고려초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승본리의 산 속에 서 있는 높이 160cm의 석불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고, 코와 귀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온화한 인상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배 앞에서 가지런한 옷주름을 나타낸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약그릇을 들고 있어서 이 불상이 중생의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를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고 윗부분만 남아 있는데, 둥근 형태의 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의 양식상 신라말 또는 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3호_예천 연방사 석가모니후불탱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3호 _ 예천 연방사 석가모니후불탱화 (醴泉 蓮邦寺 釋迦牟尼後佛幀畵) 수 량 : 1幅 지정일 : 2016.04.28 소 재 지 : 경북 예천군 예천읍 대창학교길 39-4 예천 연방사 소장 석가모니후불탱화는 세로 172㎝, 가로 191㎝ 크기의 비단 바탕에 채색을 베푼 불화이다. 도상 구성은 화면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측에 협시보살을 배치하여 三尊像을 구성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범천, 제석천, 가섭과 아난, 나한 2위를 배치하였다. 전반적으로 채색은 적색과 녹청색에 황백색, 백색, 청색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화면 하단의 畵記에 의하면, 1813년(嘉慶 18)에 수화승 定敏을 비롯한 총 13명이 제작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분적으로 본지와 안료의 박락이 진행되었지만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3호_보문사 극락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3호 _ 보문사 극락전 (普門寺 極樂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8.09.23 소재지 : 경북 예천군 보문면 보문사길 243 (수계리) 보문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다. 이후 여러 차례 재난을 당하여 무너진 것을 고려 명종 14년(1184) 보조국사 지눌이 극락전을 비롯하여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극락전과 반학루, 삼층석탑만 남아 있다.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의 앞쪽 기둥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되어 있고, 뒤쪽 기둥은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을 섞어 놓았다. 조..

황금이끼 낀 불상 보러 가세요. 예천 와룡동 석조여래입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_ 예천 와룡동 석조여래입상 (醴泉 臥龍洞 石造如來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와룡리 41번지 시 대 : 통일신라시대 추정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금산사(金山寺) 절터에 머리를 잃어버린 채 방치되어 있던 것으로, 현재의 머리 부분은 나중에 새로 만든 것이다. 불상의 몸 전체가 심하게 닳아서 얼굴의 표정은 알아 볼 수가 없다. 신체에는 양 어깨를 감싼 옷이 걸쳐져 있으며, U자형의 주름이 아래부분까지 흘러내려져 있다. 불상의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중대가 없어진 상태에서 상대와 하대만을 겹쳐 쌓았다. 남아 있는 대좌와 불상의 어깨 등을 다듬는 솜씨가 매우 세련되고, 전체적으로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