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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유형문화재 12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_부여 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_ 부여동헌 (扶餘東軒) 수 량 : 3동지정일 : 1982.08.03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관북리)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 건물로 동헌·객사·내동헌 등이 남아있다. 동헌은 당시 부여현의 공사를 처리하던 곳으로, 고종 6년(1869)에 지었고 1985년에 크게 수리하였다.동헌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도 하는 공포를 짜지 않은 민도리집으로,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다. 왼쪽 3칸은 대청으로 판벽을 치고 문을 달았으며, 오른쪽 2칸은 온돌방을 들이고 앞쪽에 툇마루를 놓았다. ‘초연당(超然堂)’이라는 현판이 결려 있으며 ‘제민헌’이라고도 한다.동헌과 같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_의열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 _ 의열사 (義烈祠) 수   량 : 1동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로29번길 11-33 (부여읍, 의열사)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 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_의열사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 _ 의열사비 (義烈祠碑) 수   량 : 1기지정일 : 1976.01.08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석탑로남령길 36 (부여읍)시   대 : 1575 의열사의 건립과정과 그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조선 선조 8년(1575) 부여현감 홍가신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선조 10년(1577)에 임금이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렸다.비의 형태는 네모진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이 고장 출신이었던 백제의 3충신(忠臣)인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시대에 신돈을 탄핵하다가 물러난 이존오의 공로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 홍가신이 사당을 지어 이들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는 조선시대의 정택뢰, 황일호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_부여 석목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_  부여 석목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扶餘石木里石造毘盧蔗那佛坐像) 수   량 : 1구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논절로 25-6 (석목리)시   대 : 고려시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옛 절터에 모셔졌던 주존불(主尊佛)로서, 현재는 절터만이 남아 있다. 부처의 얼굴이 눈병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얼굴이 많이 손상되었다.머리 위에는 넓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으며, 둥글고 풍만한 얼굴은 손상되어 세부기법은 알 수 없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데, 손과 발의 세부수법이 형식화 되었다.옷은 몸에 밀착되어 간략한 옷주름으로 표현하여 무릎 앞에까지 덮여 있는데, 옷주름이 섬세하지 못..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_부산각서석, 대재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 _ 부산각서석 (浮山刻書石) 수   량 : 1기지정일 : 1976.01.08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672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는데, 청나라에서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간섭하여, 결국 그는 부여로 낙향하였다.그 후 우암 송시열이 이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후손에게 전하였고, 숙종 26년(1700)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호_금성산 석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호 _ 금성산석불좌상 (錦城山石佛坐像) 수    량 : 1구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계백로 334-47 (부여읍)시   대 : 고려시대 금성산 남쪽 기슭의 옛 절터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치병과 득남에 영험하다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예배되다가 최근 조왕사(朝王寺)라는 법당을 짓고 주존불(主尊佛)로 모시고 있는 전체높이 1.27m의 석불좌상이다.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큰 편인데, 얼굴은 볼과 턱이 둥글고 풍만하며, 목은 짧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곡선으로 처리되어 좁지만 둥근 배로 인하여 안정감이 있고, 신체 각 부분의 윤곽은 굵고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옷은 신체에 밀착되어 무릎까지 덮고 있으며 옷주름은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_석성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석성동헌 (石城東軒) 수    량 : 1동지정일 : 1987.08.03소재지 :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석성로 124 (석성리)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석성동헌은 기록에 의하면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후에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석성은 원래 백제의 진악산현이었는데 고려 초에 석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태종 15년(1415)에 현이 설치되고 후에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에 면이 되었다.앞면 4칸·옆면 3칸으로 홑처마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석성면사무소로 사용되던 한식 건물로 주변에 관아건물이 많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 밖에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_홍산객사

홍산 객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_ 홍산객사 2. 충청남도 기념물 제3호 _ 홍산 만덕교비 3.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 _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_ 홍산객사 (鴻山客舍) 수 량 : 1동 지정일 : 1982.08.03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로 47 (북촌리) 조선 헌종 2년(1836) 홍산군에 세운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국왕의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올리는 한편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중앙관리를 접대하고 유숙시키던 곳이다. 중앙에 정당이 있고 양쪽에 익실이 있다. 정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앞면은 문짝없이 트였고 옆면과 뒷면은 벽을 둘러 막았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0호_부여 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0호 _ 부여 홍산상천리마애불입상 (扶餘 鴻山上川里磨崖佛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2.12.08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산104-1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태봉산 정상의 북쪽 산중턱 암벽에 조각한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전체높이 6m로 한면을 택하여 조각하였는데 앞쪽이 10˚정도 기울어져 있다. 민머리이며 그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커다랗게 솟아 있다. 둥글 넓적한 얼굴에 눈은 가늘게 감았고 입술은 두터우며 귀는 길게 늘어졌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있는데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에는 나비모양으로 묶은 띠매듭이 있어 매우 독특하다. 몸체에 비하여 얼굴이 크고 우람한 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_부여 현내리 삼층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 _ 부여 현내리 삼층석탑 (夫餘 縣內里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3.12.26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금백로 369-18 (석성면)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현내리 탑골마을에 서 있는 이 부도는 주위에 별다른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원래의 자리인지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맨 아래의 바닥돌은 보이지 않고, 그 위의 기단(基壇)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층으로 마련된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 윗돌을 괴어주는 가장자리에는 얕게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2층을 이루는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은 기단에서처럼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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