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작품 16

천경자(千鏡子)의 <구즈코>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79, 종이에 채색, 24×27cm, 개인 소장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의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는 늘 내 마음 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 천경자. 「꿈과 바람의 세계 」, 경미문화사, 1980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2023. 04.18, 소마미술관_다시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청허(淸虛)'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천경자(千鏡子)의 <여인>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86, 종이에 채색, 26×23.3cm, 개인 소장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의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는 늘 내 마음 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 천경자. 「꿈과 바람의 세계 」, 경미문화사, 1980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2023. 04.18, 소마미술관_다시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청허(淸虛)'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천경자(千鏡子)의 <꽃과 나비>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73, 종이에 채색, 71.5×89.5cm, 개인 소장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의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는 늘 내 마음 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 천경자. 「꿈과 바람의 세계 」, 경미문화사, 1980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2023. 04.18, 소마미술관_다시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천경자(千鏡子)의 <언젠가 그날>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69, 종이에 채색, 195×135cm, 한솔문화재단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의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는 늘 내 마음 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 천경자. 「꿈과 바람의 세계 」, 경미문화사, 1980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2023. 04.18, 소마미술관_다시보다:한국근현대미술전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천경자(千鏡子)의 <자화상>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69년, 종이에 잉크, 61×47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970년..

천경자(千鏡子)의 <고(孤)>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74년, 종이에 채색, 38.5×23.3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

천경자(千鏡子)의 <여인>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74년, 종이에 잉크, 20.5×15.2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

천경자(千鏡子)의 <새>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73년, 종이에 채색, 58.5×39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

천경자(千鏡子)의 <청혼>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89, 종이에 채색, 40×31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9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