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저 조익선생 2

성리학의 대가인 조익선생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_ 조익선생묘 (趙翼先生墓) 면 적 : 97,887㎡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산33-1번지 조선 후기의 문신인 포저(浦渚) 조익(1579∼1655) 선생의 묘이다. 선조 35년(1602)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광해군 3년(1611)에는 이언적·이황 등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주장하다가 고산도찰방으로 좌천되었고, 이어 웅천 현감이 되었다. 1613년 인목대비가 폐비가 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충청도 신창 도고산 아래 초가를 짓고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로 인하여 예산과 인연이 맺어진 것으로 묘소가 예산 신양면에 있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맨 먼저 기용되어 이조좌랑이 되었고, 김육과 함께 대동법을 확대·시행하는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_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_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浦渚遺書 및 松谷文集板刻) 수 량 : 633매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조선시대의 문신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과 그의 셋째 아들 송곡 조복양(趙復陽,1609∼1661)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으로, 모두 633매이다. 조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음서로 정포만호가 되고 선조 35년(1602) 별시과에 내과로 급제한 이래 여러 벼슬을 거친 후 대사헌,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이, 성혼의 문묘종사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사직했다.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다. 조복양은 김상헌의 문인으로, 인조 11년(1633)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직을 거쳐 부교리로 붕당의 폐를 한탄하여 사직하려 했으나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