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유형문화재 4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_육절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_ 육절려 (六節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1.08.05 소재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공근남로169번길 92-7 (매곡리)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숨진 진주목사 서예원을 비롯한 그의 일가족 6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서예원은 조선 선조 26년(1593) 왜적의 2차 침입 때 적은 군사와 무기를 가지고 진주성을 굳게 지키다 결국 전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씨와 큰아들 계성, 며느리 노씨 그리고 어린 딸도 밤낮으로 군사들을 도우며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 아들 계철은 강에 몸을 던졌으나, 왜적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3년 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숙종 4년(1678)에 서씨 가족의 충절이 밝혀진 후, 숙..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1호_상동리 삼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1호 _ 상동리 삼층석탑 (上洞里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1번지 성덕사의 옛터에 석불좌상과 함께 남아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基壇部)은 아랫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3층 몸돌은 잃어버려 없어진 것을 탑을 복원하면서 새로이 끼워 넣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층과 2층은 4단씩, 3층은 3단으로 새겼으며, 낙수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지붕돌의 너비가 좁고 두꺼워지는 등 양식상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_상동리 석불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 _ 상동리 석불좌상 (上洞里 石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195-1번지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있는 상동리 3층석탑과 나란히 있는 돌로 만든 불상이다. 광배(光背)만 파손되어 흩어져 있을 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와 불신이 완전한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둥글고 복스러운 얼굴은 입가에 미소를 띠어 자비스럽게 보이는데 신라 전성기 불상의 이상적 사실미가 엿보인다. 당당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무릎 위에 올려 왼손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자연스런 손모양,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의 유려한 옷주름 등에서도 역시 이상적 사실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좌는 8각 연화좌인데 하대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9호_중금리 삼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9호 _ 중금리 삼층석탑 (中金里 三層石塔) 수 량 : 2기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 횡성군 갑천면 태기로구방5길 40 (구방리) 시 대 : 통일신라시대 추정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탑을 품었던 절터는 민가와 경작지로 변하여 탑 이외의 다른 유물은 남아있지 않다. 2층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두 탑이 거의 같은 규모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에는 기둥모양과 불법을 수호하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고,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만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에 장식된 조각수법이나 각 부분의 짜임새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