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_ 무안박씨요여(務安朴氏 腰輿) , 복제품
수 량 : 1기 요여
지정일 : 2004.10.30
소재지 : 논산시(論山市) 상월면 학당리 368번지
시 대 : 조선 후기
무안박씨 종중의 요여는 홍성 노은서원이 철폐된 1871년에 종중에서 봉사(奉事)를 위해 제작하여 성삼문(成三問)의 신주를 논산시 상월면의 암천공 재실로 봉안할 때와 1903년 성삼문의 사손(祀孫)이 결정되어 문절사(文節祠)에 신주를 봉안할 때에 사용되었다.
요여는 붉은색, 회색, 백색으로 외부를 칠하였고, 천정은 직조물을 사용하여 납작한 반구형의 모양을 하였으며 지붕의 중앙 부분에 보주형의 장식을 달았다. 사방에 붉은색의 처마를 만들었고, 좌․우․후면에는 들창문을, 정면에는 쌍창문을 하였다. 또한 가마의 아래에 툇마루와 철제난간을, 4면의 문틀 상․하․좌․우에는 안상을 조각하여 붉은색, 회색, 검정색으로 칠하였고, 네 귀퉁이와 문에는 철제 장식을 사용하여 모양과 견고함을 더하였다.
현재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무안박씨요여 (務安朴氏 腰輿), 복제품
성삼문의 신주를 옮길 때 사용했던 가마, 무안박씨 요여(務安朴氏腰輿)
요여(腰輿)는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이다. 1871년 홍주목 노은리(현 홍북읍 노은리)의 노은서원(魯恩書院)이 훼철되어 성삼문의 신주가 갈 곳을 잃자, 성삼문의 외후손 박진하가 노성의 당호재(현 논산시 상월면)로 신주를 옮길 때 사용하였다. 이후 1903년 연기(현 세종특별자치시)에 세워진 문절사로 옮길 때도 사용하였다
무안박씨요여 (務安朴氏 腰輿), 복제품
무안박씨요여 (務安朴氏 腰輿), 복제품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 문절사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 문절사(文節祠)에 신주를 봉안할 때에 사용되었던 무안박씨요여 (務安朴氏 腰輿)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1호 _ 금남 문절사 (錦南 文節祠)
면 적 : 63.6㎡
지정일 : 2012.12.31
소재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330-5
매죽헌 성삼문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사람이다.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세종 20년(1438)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와서 1446년 10월 9일에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박팽년, 허조등과 단종복위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다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에게 숭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육신의 한 사람일뿐 아니라 타고난 자질이 준수하고 문명이 높았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문절사는 달전리 부락의 북쪽에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금남 문절사 (錦南 文節祠)
무안박씨요여 (務安朴氏 腰輿)는 1903년 성삼문의 사손(祀孫)이 결정되어 문절사(文節祠)에 신주를 봉안할 때에 사용되었다.
2022.06.03, 홍주성 역사관
글 문화재청, 전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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