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강진 백련사 (2017.10.06.금요일)

기리여원 2017. 10.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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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와 동백이 아름다운

                                                                    만덕산 백련사

                     



                      1. 보물 제1396호 _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2. 천연기념물 제151호 _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3.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_ 백련사대웅전 (白蓮寺大雄殿)                

                      4.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_ 강진백련사원구형부도 (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만덕산 일주문


백련사 역사


백련사의 원래 이름은 만덕사로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1211년(고려 희종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白蓮社)로 불리우게 되었다. 고려 후기 정치와 종교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몽고와 왜군의 침략으로 살육과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시대에 요세 스님은 어둠의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희망을 말하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결사운동을 벌인다. 이렇게 태동된 백련결사는 삶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 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 결사 운동이었다.


원묘국사의 백련결사는 120년간 고려8분의 국사(원묘국사, 정명국사, 원환국사, 진정국사, 원조국사, 원혜국사, 진감국사, 목암국사)를 배출하고 번창하였다.

고려사기를 보면 공민왕자가 1351년(충정3년)에 백련사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찰은 고려말 왜구가 세 차례나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을 때 페허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1430년(세종12년)에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20동과 서원4동을 건립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행호토성을 쌓는다.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입산하여 8년간 큰 법회를 열고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기원하는 수륙제를 지내며 수행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백련사는 청허 휴정선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소요대사, 해운대사, 취여대사, 화악대사, 설봉대사, 송파대사, 정암대사, 연파대사)를 배출하며 이어져 내려왔다. 백련사에 8국사와 12종사(宗師)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8국사는 고려때 나왔으며 8종사는 조선시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도 4종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그 가운데 여덟 번째가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교류하던 아암 혜장선사(1772-1811)로 두륜산 대흥사에서는 12대 강사로 꼽힌다. 백련사 옆 다산초당에 적거했던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에 자주 들러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백련사는 고운 정성으로 차茶인연을 세상에 수놓았습니다. 백련사"만경다설"에서 회주스님이신 효서 여인스님께서 자연에 어리는 찻잎을 빌려서 직접 만든 차를 만나실수 있습니다. 만경다설(萬景茶說)T.061 422 0838




                                                                          만덕산 백련사 일주문 편액



                                                         천연기념물 제151호 _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지정일 : 1962.12.07

소재 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25 (만덕리)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강진에 있는 백련사 부근에 있는데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굴참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m쯤 되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매우 아름다워 이 지역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동백림의 유래에 관하여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 초당이 가까이 있고, 이곳에서 다도(茶道)연구를 했던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우리나라의 난온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인 동백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  좌.우측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합니다.












                                                                                  백련사 해탈문



                                                                               백련사 해탈문 편액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_ 백련사대웅전 (白蓮寺大雄殿)                



지정일 : 1986.02.07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만덕리)         



만덕산에 위치하는 백련사는 만덕사라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1년(839)에 지은 절이다.
백련사 대웅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안에는 석가모니불상이 모셔져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_ 백련사대웅전 (白蓮寺大雄殿)                


대웅보전


1760년(영조36) 2월에 큰 화재가 있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1762년 4월 13일에 현재의 대웅보전을 중건했다.

유독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세분의 부처님을 모시고 대웅보전 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이 한편의 오케스트라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모법연화경에 보면 영축산에서 부처님께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는 만다라, 만수사 꽃비가 내리고 하늘의 노래를 좋아하는 긴나라와 하늘의 음악을 담당하는 건달바,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들과 하늘 신, 보살, 사부대중들이 이전에 없었던 일에 기뻐했다고 한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벽화는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그려졌다,

또한 두 마리의 영수(靈獸), 봉황과 사자가 해학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사람의 다리를 하고 있는 가릉빈가와 도끼를 물고 있는 용,여의주를 몰고 있는 용등이 유독 아름답다. 조선의 사람들은 대웅보전을 반야용선이라 했다. 대웅보전에서 아마타불을 염하면 이 반야용선을 타고 저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웅보전의 그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은 이상향을 향한 옛 선조들의 지극한 신앙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백련사 대웅보전 편액












백련사의 유래

구강포 바다에서 바라본 만덕산의 모습이 마치 활짝핀 연꽃이 사찰을 감싸 앉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큰 인물이 많이 나올 터라고 전해진다. 또한 백련사 연지(蓮池)는 물이 차가워 연꽃이 잘 피지 않는데 고려시대때 연지에 하얀 연꽃이 필 때마다 국사(國師)가 한분씩 배출이 되어 8분의 국사가 나왔다는 설화가 있다









                                                                                 백련사 삼성각


삼성각에는 독성불화와 칠성불화 그리고 1931년에 그려진 산신불화가 있는데 소나무 아래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령과 호랑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동자그림이 매우 민화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만덕산은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예로부터 자손들을 위해 토속신앙인 마덕산 산신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백련사 명부전


명부전은 17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명부전에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십대왕명과 판관, 녹사, 인왕상 각2채, 사자상1체가 모셔져 있다



                                                                                 백련사 명부전









                                                                                백련사 응진당


응진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아난, 가섭 등의 16나한상을 모시고 후불화로 영산회상도를 모셨다










                                                                                    백련사 천불전











              백련사 범종각






보물 제1396호 _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지정일 : 2004.01.26 

시    대: 고려시대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백련사 (만덕리



백련사 사적비는 백련사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447㎝ 규모의 전형적인 석비(石碑)이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부는 고려시대의 조성으로, 비신과 이수는 1681년(조선 숙종 7)에 조성되어 각기 서로 다른 건립연대를 보이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地臺石)과 더불어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되었다. 용두(龍頭)는 목을 움츠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입은 상·하 7개의 가지런한 이빨로 꽉 다문 모습이며, 하단에는 길게 수염이 흘러 목주름까지 늘어져 있다. 위 입술은 약간 들려 눈은 삼각형의 구도 안에 동그란 눈동자가 볼륨있게 표현되었다. 용두의 뿔은 목 뒤로 흐르며 2조로 갈라지며 비좌(碑座)에 연결되어 있다. 귀부의 등면은 너비 30㎝의 음각선으로 곽을 조성한 후 내부에 당초문(唐草紋)을 양각했다. 귀갑문(龜甲紋)은 6각형으로 내부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네 발은 모두 5개의 발가락을 지녔으며, 꼬리는 왼쪽으로 틀어 올렸다. 귀부의 중앙 상면에는 비좌가 조성되었는데, 측면에는 초화문(草花紋)이 양각되었고, 상면에는 118㎝×15㎝ 규모의 비신공(碑身孔)이 마련되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의 크기는 227㎝×190㎝×110㎝이다.

비신은 2면비로 전·후면에는 비문이, 양 측면에는 초화문을 양각했다. 비신 전면의 상단에는 자경 15㎝ 크기의 전서체로 「만덕산백련사비」라 새겼고, 횡서로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 기록하고 있다.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조정저(1631∼1690)가 지었고, 현록대부랑선군 이우(1639∼1693)가 썼는데, 상단의 전서만은 가덕대부랑원군 이간(?∼1699)이 썼다. 말미의 명문으로 보아 1681년(조선 숙종 7)에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수에는 우진각지붕의 형태로 하단에는 목조 건축의 겹처마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상에는 2마리의 용이 등을 맞대고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형상인 바, 매우 사실적인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비신의 크기는 234㎝×118㎝×29㎝이며, 이수는 170㎝×75㎝이다.

백련사 사적비는 귀부와 비신의 건립연대가 서로 다른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아 귀부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조각수법도 뛰어나 고려시대 전기의 작풍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사적비 역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석비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양 측면에 양각된 초화문은 이 시대의 석비로서는 특이한 예라 하겠다. 따라서 백련사 사적비는 귀부와 석비가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있지만, 각 부재가 지닌 양식상의 특성으로 보아 가치가 있다.     








보물 제1396호 _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1681년에 탄기스님은 절의 사적이 오래되어 없어져 버릴 것을 염려하여 만덕산 백련사 사적비를 세운다.

다산 정약용이 편집한 [만덕사지에 "옛 비는 유실되어 그  소재를 알 수 없고 귀부만 남았는데 탄기 스님이 다른 돌로 비를 세우면서 옛날 비석의 귀부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적비 전면에는 백련사의 역사를 기록하고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양 측면에는 아름다운 연꽃무늬를 양각했다.

이러한 사적비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옛 역사를 복원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_ 강진백련사원구형부도 (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지정일 : 1999.11.20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25 (만덕리)         



백련사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사리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탑은 네모난 기단(基壇)위로 공 모양을 한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특히 탑신의 맨 윗부분에 연꽃무늬를 둔 구슬띠를 새겨 놓아 시선을 모은다.
이 절내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양식적으로도 특이한 기법을 보이고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_ 강진백련사원구형부도 (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부도의 형태가 원래대로  보존이 되었습니다. 모양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부도주변은 온통 백련사 동백나무숲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봄에는 붉은 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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