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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299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상생의 조화, 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60호 _ 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禮山 大興鄕校 은행나무) 수량/면적 : 1주(3,463㎡) 지정일 : 2002.08.1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향교길 88 (교촌리) 예산 대흥향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약 600여년의 은행나무로서 원줄기의 중앙 분지 위에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려 성장, 공생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수형이 장엄하며, 약 300여년 전부터 성황제를 거행하여 오는 등 민속적인 측면과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지상에서 3m지점에서 4개의 가지가 분지되었고, 수형이 평정형을 이루며 웅장하고 장엄하다. 분지된 곳의 중앙에 수령 약 100년 정도의 느티나무(직경 30㎝)가 뿌리를 내려 공생하고 있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117호_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전라북도 기념물 제117호 _ 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高敞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수량/면적 : 88주(53,314㎡) 지정일 : 2002.08.02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123번지 외 37필지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 앞 천변 양옆으로 하천뚝을 따라 수령2~3백년이 됨직한 귀목나무와 은행나무, 소나무, 벚나무, 왕버들 나무등 12종에 90여 그루의 나무숲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앞산에 올라가 마을 형국을 보니 마을이 배 형상인데 마을앞에 거친 대산천이 흐르고 있어 배를 단단히 매 놓지 않으면 냇물에 떠 내려갈 형국이라서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배를 매어둘 말뚝으로 사용할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마을사람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앞 하천 뚝에 심어져 잇는 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111호_산수리 지석묘

전라북도 기념물 제111호 _ 산수리지석묘 (山水里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09.21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 544번지 시 대 : 청동기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산수리 지석묘는 고창군 산수리 방축마을 도로 건너 동쪽 100여m 지점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네모난 모양의 넓고 큰 덮개돌을 5개의 굄돌로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남북 방향으로 된 화강암의 덮개돌을 받치는 굄돌은 북쪽에 3개, 남쪽에 2개가 있는데, 땅에서 70∼1..

충청남도 기념물 제100호_청양 도림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00호 _ 청양 도림사지 (靑陽 道林寺址) 면 적 : 12,545㎡ 지정일 : 1996.02.2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장평면 적곡리 667외 3필 칠갑산의 남향한 언덕 계곡 쪽으로 있는 도림사 터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도림사는 고려시대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조각으로 보아 조선시대까지는 맥을 이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내에는 도림사지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과 석불입상 1구가 상반신이 파손된채 남아있는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1973년 해체 수리시에 발견된 기와와 사리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청양 도림사지 표지판 이 곳에 주차를 하고 칠갑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로 600m 오르면 도림사지를 만날 수..

충청남도 기념물 제133호_청양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3호 _ 청양향교 (靑陽鄕校) 면 적 : 10,830㎡ 지정일 : 1997.12.2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청양읍 교월리 34-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 충청남도향교재단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청양향교를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 이곳에 이미 향교와 문묘가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고종 11년(1874)과 1904년 등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관리사 등의 건물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_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 _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 (淸州韓氏文翼公派墓域)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97.05.16 소재지 : 경기 시흥시 거모동 산62번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조의 장인인 한준겸(韓浚謙, 1557∼1627) 선생과 후손들의 가족 묘역이다. 묘역은 한준겸 묘를 중심으로 좌측에 아들 한회일(韓會一) 묘역과 우측에 손자 한이성(韓以成) 묘역, 그리고 앞쪽에 증손 한두상(韓斗相) 묘역이 4대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한준겸 묘역은 부인 황씨(黃氏)와 합장한 단분(單墳 ;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17세기 전반기의 묘제를 잘 보여주는 곳으로 묘표에서부터 동자석인과 장명등까지 골고루 갖춘 표준이 되는 묘역이다. 묘표는 1628년(인조 5)에 제작한 것으로 대리석 재질의 정갈한 비석이다. ..

기념물/경기도 2023.03.20

경기도 기념물 제74호_농성

경기도 기념물 제74호 _ 농성 (農城) 수량/면적 : 1동 지정일 : 1981.07.16 소재지 : 경기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산41-5번지 해발 24m의 낮은 구릉지에 있다. 성벽은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외곽을 감싸는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농성 주변은 낮은 구릉과 평야가 펼쳐져 있어 남쪽과 서쪽은 아산만 일대까지 바라보인다. 농성 북쪽 2km 지점에는 진위천과 안성천이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향하고 있으며 동서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농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이 긴 장방형이다. 전체 둘레는 337m이며 외벽이 높이는 8∼10m 다. 성벽은 부분적으로만 조사되었다. 토성벽은 성토층이 두껍고 경사지게 조성된 것으로 보아 판축공법이 아니라 성토다짐공법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문지는 동벽과 서벽의 중간부..

기념물/경기도 2023.03.02

독립운동가 안재홍 생가

경기도 기념물 제135호 _ 안재홍 생가 (安在鴻 生家)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92.12.31 소재지 : 경기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번지 근대 시기의 대표 언론인 민세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이 태어나 살던 집이다. 안재홍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 주필로 재직하면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을 이끌었으며, 고대사 연구와 문자보급에 앞장선 민족지사이며 학자였다. 이 집은 평택시 고덕면 계루지 마을의 야산 기슭에 남향하고 있다. 원래 상당한 규모의 집이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만 남아있다.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배치를 이루고 사랑채의 동쪽으로 대문채가 위치한다. 상량문에 안채는 1914년에 지었으며, 사랑채는 1932년에 지었다고..

기념물/경기도 2023.02.28

충청북도 기념물 제67호_충주 임경업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67호 _ 충주 임경업 묘소 (忠州 林慶業 墓所)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1984.12.31 소재지 : 충북 충주시 풍동 산45-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 평택임씨종중 병자호란 때의 명장 임경업(1594∼1646)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나라를 지키는 일에 주력하였다. 청을 반대하던 장군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반대파에 의한 모함으로 희생되었다. 숙종 23년(1697) 다시 좌찬성의 관직이 내려지고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의 합장묘로 큰 편이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화강..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_충주 팔봉서원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 _ 충주 팔봉서원 (忠州 八峰書院)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2003.06.1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팔봉안길 11-6 (대소원면) 시 대 : 조선 선조 15년(1582) 창건 충주 팔봉서원은 조선시대 명현(名賢)인 이자·이연경·김세필·노수신 등 4현을 모신 서원으로 후생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팔봉서원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건립되었고, 현종 13년(1672)에 나라에서 ‘팔봉서원(八峰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으로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다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 전통양식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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