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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1900 75

에곤 실레의 <시인>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1911년,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밑그림 없이 빠른 붓질로 그린 이 작품에서 애곤 실레는 자신을 뒤틀린 자세를 한 시인으로 표현했다. 어색할 정도로 심하게 왼쪽으로 꺾여 있는 실레의 머리는 뒤쪽 흰색 공간에 둘러싸여 있다. 창백해 보이는 뭄에 검은색 윗옷만을 걸친 실레는 어두운 배경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오른쪽 손목을 살짝 잡고 있는 왼손아래로, 배꼽과 성기를 붉은색으로 그렸다.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에곤 실레의 <과장된 꽃과 장식적 배경>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1908년, 캔버스에 유화,  슴색과 은색 안료, 레오폴트미술관애곤 실레는 1907년 클림트를 만난 후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정사삭형 캔버스에 그려졌는데, 이는 클림트가 풍경을 그릴 때 즐겨 쓰던 방식이다. 장식적으로 식물을 표현하고 배경을 거의 그리지 않는 것 역시 클림트 화풍의 영향이다. 깊은 보라색과 주황색으로 표현된 식물이 깊이감 없는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거의 단색으로 배경을 그린 듯하지만, 반짝이는 금색과 은색 안료를 사용해 장식 미술의 영향이 드러난다.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에곤 실레의 <국화>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1910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실레가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스승이었다. 당시 클림트와 실레의 특별한 관계를 눈여겨본 사람들은 실레에게 '은색의 클림트', '충실한 추종자'와 같은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섬세하게 그려진 하얀색 국화는 비엔나 분리파가 지향한 장식 미술의 영향을 보여 준다. 공간감 없는 검은색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국화의 구성에서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한 자포니즘과 일본 목판화의 특징이 엿보인다.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에곤 실레의 <어머니와 두 아이 Ⅱ>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1915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어머니는 얼굴과 맨발을 제외한 몸 전체를 초록색으로 가리고 있다. 어머니의 음푹 꺼진 눈과 입은 해골을 연상시킨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운 아이 역시 죽어 있는 듯하다. 실레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은 에 빗대 이 작품을 그렸다. 어머니의 왼쪽에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어린아이가 한 명 더 있다. 줄무늬 옷의 다채로움은 순수함과 희망을 상징하지만, 얼굴에서는 절망감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였던 실레의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안톤 콜리히의 <소년과 큐피드>

_ 안톤 콜리히(1886~1950, 오스트리아),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안톤 콜리히는 신예술가 그룹에서 활동하며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이끌었다. 콜리히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예술의 흐름을 이끌었다. 콜리히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평생 인체를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특히 남성 누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벽을 등지고 선 소년은 이미 어른에 가까운 큰 발과 건장한 몸을 보여 주지만 다소 부끄럽고 어색한 모습이다. 옆에 있는 사랑의 신 큐피드는 소년이 사랑을 알게 되는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_ 안톤 콜리히(1886~1950,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

구스타프 클림트의 <하나 지역의 소녀>

_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1883년경, 패녈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작품에 제작 시기가 쓰여 있지 않지만, 구스타프 클림트가 학생이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체코 모라비아에 있는 하나 지역에서 온 소녀를 그렸다. 소녀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하나 지역 풍습을 따른 것이다. 옷과 베경을 모두 옅은 회색으로 칠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얼굴이 더욱 두드러진다. 살짝  옆을 보는 소녀의 눈길은 그녀가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_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카를 몰의 <벨베데레궁전>

_ 카를 몰(1861~1945, 오스트리아), 1909년경, 종이에 다색 목판화, 레오폴트미술관 19세기 후반 비엔나에서는 목판화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비엔나 분리파의 창립 회원이었던 카를 몰 역시 비엔나 풍경을 담은 판화를 많이 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조각상에서 쭉 뻗은 정원 길을 띠라 벨베데레 궁전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몰은 빛의 반사와 섬세한 색감을 세련되어 활용하여 겨울 분위기를 표현했다  _ 카를 몰(1861~1945,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카를 몰의 <쇤브룬에서>

<쇤브룬에서> _ 카를 몰(1861~1945, 오스트리아), 1911년,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카를 몰의 풍경화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섬세한 빛과 독특한 색체로 유명하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을 그린 이 작품에서 몰은 햇빛의 미묘한 변화와 그림자로 색감이 달라지는 풍경을 파스텔의 부드럽고 조화로운 색조로 표현했다. 몰은 이러한 색체를 사용하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고,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그림에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에곤 실레의 <애도하는 여인>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1912년, 패널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어두운 천으로 머리를 감싼 여인의 얼굴과 창백한 피분은 마치 해골을 연상시킨다. 여인의 머리 뒤로 또 다른 인물의 얼굴이 살짝 드러난다. 눈썹을 치켜들고 입을 꼭 다문 채 관람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인물은 실레가 자신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다. 실레는 인물화에서 종종 두 개의 얼굴이나 다른 신체 부위를 사용해 인물 내면의 갈등, 분열된 정체성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 심리를 깊이 탐구한 실레가 이중적인 감정이나 복잡한 내면을 다루던 벙법이었다. _ 에곤 실레(1890~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

_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1898년경, 캔버스에 유화, 클림트재단 구스타프 킬림트는 외국의 선진 예술을 경험하여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890년대 후반 클림트의 초상화에서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련된 모자를 쓰고 소매가 푸엉하게 부푼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의 파란 눈으로 관람자를 바라 보고 있다. 여인 뒤쪽에 우거진 수풀과 블라우스 소매를 거친 붓놀림으로 두껍게 칠해 표면 질감이 두드러지도록 표현했다. _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2025.02.07, 국립중앙박물관_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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