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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 2774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영모8폭병풍>

영모8폭병풍 _ 장승업(張承業, 1843~1897), 19세기 장승업은 조선말의 화가로, 자는 경유景猷, 호는 오원吾園 · 취명거사 醉溟居士 · 문수산인文峀山人이다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생기 넘치는 작품들을 남긴 조선왕조의 마지막 천재화가이다. 영모6폭병풍 _ 장긍업(張承業, 1843~1897), 19세기 영모8폭병풍 _ 장승업(張承業, 1843~1897), 19세기 영모8폭병풍 _ 장승업(張承業, 1843~1897), 19세기 영모8폭병풍 _ 장승업(張承業, 1843~1897), 19세기 2016.01.13, 서울대박물관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보물 제259호_남양주 수종사 부도 사리장엄구

보물 제259호 _ 남양주 수종사 부도 사리장엄구 (南陽州 水鐘寺 浮屠 舍利莊嚴具) 지정일 : 1963.01.21소재지 : 불교중앙박물관시    대 : 고려시대 남양주 수종사 부도 사리장엄구(南陽州 水鐘寺 浮屠 舍利莊嚴具)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수종사 석조 부도를 고쳐 세울 때 발견된 유물들이다.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금제구층탑(金製九層塔), 은제 도금 사리기(銀製 鍍金 舍利器)가 발견되었고, 당시 금제구층탑과 은제 도금 사리기는 청자유개호 안에 들어 있었다 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는 높이 31.2㎝, 아가리 지름 26㎝로 세로로 골이 파진 것처럼 몸 전체가 장식되었고, 뚜껑은 아름다운 꽃 덩굴무늬가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다. 뚜껑의 가장 가운데에는 모란 꽃송이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청자호의 색..

문화재/보물 2018.11.29

보물 제2259호_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보물 제2259호 _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瑞山 文殊寺 極樂寶殿)수   량 : 1동지정일 : 2024.04.02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문수골길 201 (운산면, 문수사)시    대 : 조선시대 서산 문수사는 1973년 충남 문화유산 발굴조사 시 발견된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인 발원문을 통해 금동여래좌상이 1346년(고려 충목왕 2)에 조성되었고, 문수사는 적어도 고려 말 이전부터 존재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이후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호산록」에서 사찰의 화재로 1동만 남았다는 기록 등을 통해 고찰로써의 명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방형 평면에 다포식 공포를 얹은 맞배지붕 형식의 불전으로 정확한 중건 시기..

문화재/보물 2018.11.27

보물 제456호_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보물 제456호 _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慶州 路西洞 金製頸飾) 수 량 : 1련 지정일 : 1967.06.2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신라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慶州 路西洞 金製頸飾)는 금소환(金小環) 여러 개를 연결하여 속이 빈 구형(球形)을 만들고 심엽형(心葉形) 금판을 금줄로 연결한 장식을 44개 연결한 목걸이로서, 끝에 비취 곡옥(曲玉) 1개를 달았다. 가운데가 빈 구형(球形)의 구슬은 같은 시대 귀걸이의 중간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고 목걸이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은 당대 목걸이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목걸이가 대부분 유리제 청옥(靑玉)을 연결하고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인데 비하여 이 목걸이는 청옥..

문화재/보물 2018.11.26

천연기념물 제271호_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천연기념물 제271호 _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서울 新林洞 굴참나무) 지정일 : 1982.11.09 소재지 : 서울 관악구 난곡동 721-2번지, 건영2차 아파트 단지내 굴참나무는 일본, 중국 및 우리나라에 분포하며 줄기에 코르크가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향의 건조한 곳이나 돌이 많은 땅에서도 잘 자라며, 특히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굴참나무의 껍질은 코르크로 이용되고 열매는 이듬해 10월에 익고 식용 및 약용하거나 사료로 쓰인다. 서울 신림동의 굴참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라고 전하고 있으나, 실제 나이는 약 250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16m, 가슴높이의 둘레가 2.86m에 이른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_거창 요수정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 _ 거창요수정 (居昌樂水亭) 지정일 : 2005.01.13소재지 :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시   대 : 조선시대 요수정은 요수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으나 임란 때 소실되었고 그 뒤 다시 수파를 만나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 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방은 판방으로 구성하여 배면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내었다. 누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배면 좌측의 출입구 일부..

명승 제53호_거창 수승대

명승 제53호 _ 거창 수승대에 있는 문화재 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 _ 거창 구연서원 관수루 2.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 _ 거창 요수정 명승 제53호 _ 거창수승대 (居昌 搜勝臺) 지정일 : 2008.12.26 소재지 :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위치하는 화강암 암반으로 깊고 긴 계곡과 주변 임야와 어우러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수승대’ 명칭과 관련하여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하고,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된 장소적 상징성이 큰 명승지이다 청송당(..

문화재/명승 2018.10.31

보물 제1436호_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1436호 _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居昌 農山里 石造如來立像) 수   량 : 1구지정일 : 2005.07.07소재지 :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53번지                                                                    시    대 : 통일신라 거창 농산리의 낮은 야산 기슭에 있는 이 석불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불상으로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윗면에 두 발을 새겨 놓은 1매의 대석과, 대석에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한 돌에 광배를 함께 조성한 불신 등 두 개의 돌로 구성되었다. 신체에 비하여 다소 머리부분이 큰데 얼굴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후덕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덮어 내린 통견(通肩)의..

문화재/보물 2018.10.31

보물 제530호_거창 가섭암자 마애여래삼존입상

보물 제530호 _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居昌 迦葉庵址 磨崖如來三尊立像) 지정일 : 1971.07.07소재지 :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6-2번지 시   대 ; 고려시대                                                                                                                      바위면 전체를 배(舟) 모양으로 파서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안에 삼존불(三尊佛) 입상을 얕게 새기고 있다.중앙의 본존불은 얼굴이 비교적 넙적하며, 얼굴에 비하여 작은 눈·코·입, 밋밋하고 긴 귀 등에서 둔중하고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 신체의 표현은 각지게 처리된 어깨, 굴곡 없이 차..

문화재/보물 2018.10.31

국보 제309호_백자 달항아리

국보 제309호 _ 백자 달항아리 (白磁 壺) 수 량 : 1점 지정일 : 2007.12.17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한남동) 시 대 : 17세기후반~18세기전반 백자 달항아리는 보통 높이가 40cm 이상 되는 대형으로, 둥글고 유백색(乳白色)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되어 일명 ‘달항아리’라고도 불린다. 조선 17세기 후기~18세기 전기의 약 1세기 동안(특히 18세기 전기 50년간) 조선왕조 유일의 관요(官窯)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백자제작소(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광주지역에 산포해 있던 340여 개소의 가마 가운데 금사리 가마에서 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기가 대형인 탓에 한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상하 부분을 따..

문화재/국보 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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