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삼각산 화계사 (2017.07.09.일요일)

기리여원 2017. 7. 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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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계사에 있는 문화재

      

                                 1. 보물 제11-5호 _ 사인비구 제작 동종-서울 화계사 동종

                                 2. 보물 제1822호 _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3.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 _ 화계사 대웅전



                                                                          삼각산 화계사 일주문

 

 

                                                                        삼각산 화계사 일주문 편액

 

 

 

 

 

 

 

 

 


 

 

 

 

 

 

 

 

 

 

 

 

 

 

 

 

 화계사의 역사


화계사는 고려 광종(949~975) 때 법인대사(法印大師) 탄문(坦文)스님이 인근의 부허동(浮虛洞)에 창건한 보덕암(普德庵)을,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남쪽 화계동(花溪洞)으로 법당과 요사체를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고 이름을 고치며 창건 되었다.


공해군 10년(1618) 9월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도월선사(道月禪師)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중창불사를 하여 1619년에 복구되었다. 1870년에 용선(龍船)스님과 초암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전각 등 건물들을 중수하였다.



1984년 외국인 스님들인 국제선원을 개원하였고, 1991년에 정수스님이 복합건물인 대적광전을 건립하였다. 1995년 불자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불교대학을 설립하였다. 화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에 속한다.

 

 

 



                                                          수령이 415년 된 느티나무

 

 

 

 

 

                                                                                범종각(梵鐘閣)


범종각에는 있는 범종(대종)과 법고(북), 운판, 목어 이 네가지를 보통 불구사물이라 부르는데, 사찰에서 치르는 의식을 알리거나 공양 또는 함께 일할 때 군중을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범종"은 땅 속, 특히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치고 "법고"는 가축과 짐승들을 위하여 친다. 그리고 "목어"는 수중생물, "운판"은 날아다니는 날짐승들을 위하여 치는데 불구사물을 모두 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음을 들려주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보물 제11-5호 _ 사인비구 제작 동종-서울 화계사 동종 (思印比丘製作 銅鍾-서울 華溪寺 銅鍾)                

 

지정일 : 2000.02.15

시   대 : 조선시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1683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종의 어깨 부분과 입구 부분에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몸통에는 사각형의 연곽과 그 사이에 위패 모양의 장식문양을 균형있게 배치하였다.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명문에 의하면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동종은 범종각 천장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종으로 크기는 작지만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유물이다. 본래 경북 희방사에 있던 종으로 189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1683년에 사인 스님에 의해 제작된 조선시대 종이라고 전한다. 무게가 300근에 달하며, 2002년 2월15일에 보물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염화실


염화실은 조실스님이 거처하는 곳으로, 조실스님은 선종사찰에서 참선을 지도하시는 스님 중 가장 큰 어른을 말한다. 화계사에는 고봉선사와 덕산선사가 조실을 지내셨고, 얼마 전까지 숭산 대선사께서 화계사 조실로 거쳐 하셨던 곳이 바로 이 염화실이다. 지금은 덕숭문중 수덕사 방장스님이신 설정 큰스님이 화계사 조실을 겸하고 계시며, 제자들과 일반신도들을 제접하고 계신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 _ 화계사 대웅전 (華溪寺大雄殿)    

           

지정일 : 1985.12.05

시   대 : 조선시대

 

화계사는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스님이 지은 절이다. 원래는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 법인대사가 삼각산 부허동에 보덕암을 짓고 이어져 내려오던 것인데, 신월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크게 짓고 화계사라 이름지었다. 그 후 광해군 10년(1618)의 큰 화재와 오랜 세월로 인해 건물이 퇴락하자, 고종 3년(1866) 흥선대원군의 시주로 다시 지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위해 이희승·최현배 등의 국문학자 9명이 기거하며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는 화계사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새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은 다포양식 건물이다.

화계사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기타 다른 건축부재의 장식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목조건축물이다.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대원력을 세우신 지장보살님과 저승의 심판관인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모신 전각이며,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화계사 명부전은 1878년 새로 지은 것으로, 황해도 배천의 강서사에 있던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흥선대원군의 지시에 의해 이 곳 화계사 지장전에 모셨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보물 재1822호로 지정되었다. (2014.03.12)

 

 

 

 

 

 

 

 

                                                보물 제1822호 _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지정일 : 2014.03.11

시   대 : 조선시대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서울 華溪寺木造地藏菩薩三尊像및 十王像一括)’은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과 시왕, 판관, 사자(使者), 동자, 인왕 등 총 25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존상이 주존 지장보살상과 동일한 조각양식을 갖고 있어 영철(靈哲)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당한 신체와 율동적인 옷주름 묘사 등에서 수연(守衍), 영철로 이어지는 수연파의 작풍을 볼수 있고, 지장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존상에서 코가 높고 콧날의 윗부분이 양 미간의 높이에 비해 유난히 돌출되게 조각된 것은 영철 조각의 특징으로 보인다.

비록 일부 동자상을 잃었지만 명부전 내부의 주요 존상들은 대부분 남아있어 조선 후기 명부전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조성연대, 조각가 및 봉안사찰과 이안사찰등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불상군으로 평가된다.


 

 

 

 

 

 

 

 

 

 

 

 

 

 

                                                                                    삼성각(三聖閣)


본래 화계사에는 산신각이 있었는데, 1975년에 진암(眞菴)스님이 고쳐지었다. 산신은 산신각에, 칠성은 칠성각에, 독성은 독성각에 각각 모신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세 분을 한꺼번에 모시고 건물 이름도 삼성각이라고 부른다.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기와는 동기와를 얹었으며, 내부에 1973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외부 벽화는 마음을 찾아가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천불보백성전(千佛五百聖殿)


천불보백성전(千佛五百聖殿)은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석가모니부처님 열반 후에 경전을 결집한 오백의 성자를 기리기 위한 전각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최기남이 금강산에 들어가 조성한 오백나한을 자손들이 화계사에 전각을 짓고(1964년) 모시게 되었다.


흔히 나한(羅漢)을 모신 건물은 '오백나한전' 또는 '나한전', '응진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곳만은 특이하게 천불이 덧붙여져 있다. 천불(千佛)이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여서, 천불전과 나한전을 겸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1991년 정수스님이 조성한 대적광전은 정면7칸, 측면4칸, 4층의 건물로 화계사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북합건물이다. 1층은 식당, 2층은 강의실(제일선원)과 요사, 3층은 법당(대적광전)으로 사용하며 4층은 영어법회와 템플스테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대적광전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좌우측으로 삼신불(三身佛)이 모셔져 있으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좌우측으로 삼신불(三身佛)이 모셔져 있으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다.

 

 

 대적광전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좌우측으로 삼신불(三身佛)이 모셔져 있으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다.

 

 

 

 

 

                                                                               보화루(寶華樓)


대웅전 앞마당에 큰 건물이 보화루(寶華樓)이다. 이러한 건물은 서울 근교의 왕실 원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화루 마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이는데 이 방에서 바로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933년에는 한글학회의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화계사 보화루에 기거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화계사 편액


석파 흥선대원군의 예서체

 

 

 

 

 

 

 

 

 

 

 

 

 

 

 

 

 

 

 

 

 

 

 

 

 

 

 

 

 

 


 

 

 

 

 

 

 

                                                                                    부도전(浮屠殿)


화계사 일주문을 지난 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부도전은 화계사에 주석하셨던 고승들이 사리를 모신 곳으로 숭산행원 대종사의 사리탑과 스승인 고봉선사와 덕산.적음선사 사리탑이 나란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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