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향토유적

화성 향토유적 제4호 _홍담 효자각

기리여원 2023. 3. 20. 03:11

화성 향토유적 제4호 _홍담 효자각(洪曇 孝子閣)

 

지정일 : 1986.05.20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산32번지

 

홍담(1509 ~ 1576)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태허, 본관은 남양으로 언광의 아들이다. 중종 34년(1539)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정자.교리.응교.이조정랑.도승지등을 역임하고, 명종 10년(1555) 한성부좌윤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함경도관찰사등을 역임하고, 선조때 지의금부사. 우참찬. 예조와 호조의 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훈구파의 거두로서 김개와 함께 정등 사림파와 대립했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특히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에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바 있어 별세한 뒤 고향인 이곳에 효자 정문이 세워져 생전에 극진했던 효행을 기리게 되었다

 

맞배 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은 겹처마 건물로서 8각의 장초석 위에 4개의 원주형 목주가 세워져있고 방풍판이 달려 있다. 정문내에는 ‘효자좌참찬홍담지문(洪曇之門)’이라 새겨진 현판만 걸려 있을 뿐 별다른 기명(記銘)은 찾아 볼 수 없다. 현 건물은 1986년 11월 보수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데, 규모는 정면 2.37m, 측면1.83m이다.

 

홍담 효자각(洪曇 孝子閣)

 

홍담(洪曇, 1509년 ~ 1576년)

 

홍담(洪曇, 1509년 ~ 1576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양 (토홍). 영의정 홍언필의 아들이며, 영의정 홍섬의 동생이고, 영의정 송질의 외손자이다. 그리고 남곤과도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 수찬, 검토관, 정언을 지냈고 명종 때 이조좌랑, 의정부사인, 사헌부장령, 홍문관응교, 시강관, 사간원사간, 사헌부집의, 홍문관전한 등을 거쳐서 1550년에 홍문관직제학이 되었고 곧 동부승지가 되었다. 1551년에는 우부승지가 되었고 이후 우승지로 옮겨서 참찬관을 겸하다가 좌승지로 승진했고 1553년에는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이후에 1554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외직으로 나갔다가 동지중추부사로 돌아온 뒤 한성부좌윤으로 옮겼다. 이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에 형조참판으로 옮겼다가 1556년에는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부제학 등을 지냈고 1557년에는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다시 사헌부대사헌을 거쳐서 1558년에는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다시 경기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1559년에는 사간원대사간으로 내직으로 돌아왔고 다시 1560년에 경상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1561년에 동지중추부사로 돌아온 뒤에 홍주목사로 다시 외직에 나갔다. 그러다가 1564년에 형조참판으로 내직에 다시 돌아왔고 이후에 다시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가 공조참판으로 옮겼다. 그러다 1565년에 한성부판윤으로 승차하면서 정경의 반열에 올랐고 다시 함경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선조 즉위 후 1568년에 병조판서가 되었고 1569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1574년에는 도총관이 되었고 이후 예조판서가 되었고 지의금부사와 우참찬을 역임하다가 1576년에 별세한다. 조광조의 신원에 반대를 했고, 정철 등의 사림파와 대립했다.

 

- 위키백과 -

 

홍담 효자각(洪曇 孝子閣)

 

 

홍담 효자각 좌 · 우측면

 

 

홍담 효자각 후문

 

 

홍담 효자각

 

 

홍담 효자각

 

 

孝子左參贊洪曇之門(효자좌참찬홍담지문)

 

2023.03.19,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홍담 효자각

'청허(淸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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