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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_도동묘(2020.03.25)

기리여원 2020. 3. 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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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_ 도동묘 (道東廟)


수   량 : 일곽

지정일 : 1984.02.29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463번지


도동묘는 안호가 조선 숙종 2년(1676)에 우리나라 주자학의 시조인 안향과 중국 송나라 주자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안향(1243∼1306)은 고려시대의 명신이며 학자로 밀직부사 부(孚)의 아들이며, 지금의 경북 영주군 풍기인 흥주의 죽계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원종 1년(1260)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이 되었으며, 충렬왕 15년(1289)에는 원나라에 가서 주자서(朱子書)를 손수 베끼고 주자의 초상화를 그려오기도 하였다.

사당 안에는 주자와 안향의 초상화가 놓여 있으며, 용의 모습을 한 향로와 술잔이 있다. 해마다 봄(3월 15일)과 가을(9월 15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도대문(都大門) 터 표지석



도동묘 (道東廟) 대문


* 문이 잠겨 있어 외부에서 답사합니다.


도동묘 (道東廟) 대문 현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_ 도동묘 (道東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_ 도동묘 (道東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_ 도동묘 (道東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_ 도동묘 (道東廟)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_ 곡성 도동묘 회헌실기목판 (谷城 道東廟 晦軒實記木板)


고려시대 문인이자 유학자인 안향(1243∼1306)의 시문집『회헌실기』를 간행하기 위한 목판으로, 영조 42년(1766) 죽계서원에서 간행한 초간본 목판 55매와 고종 22년(1845)에 간행한 중간본 목판 32매 등 총 87매이다.

안향은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 감찰어사, 좌승지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를 다녀오면서 주자학의 학풍을 보고, 주자 관련 서적을 베껴오고,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안향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그를 일러 ‘동방의 주자’라고 하였다. 시호는 ‘문성’이며, 여러 서원에서 그를 모시고 제사지내고 있다. 그의 영정이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목판은 판각과정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이 인쇄사 측면에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현재 전남 곡성의 도동묘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글 문화재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4호 _ 곡성도동묘안향영정 (谷城道東廟安珦影幀)


곡성 도동묘에 소장된 안향(1243∼1306)의 영정이다.

안향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초명은 유(裕),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이다. 1289년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주자를 공부하고 돌아와 주자학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널리 제자를 양성하여 그 이후 우리나라에 유학이 크게 성행하였다.

도동묘 안향 영정은 소수서원에 모셔진 안향 영정(국보 제111호)을 1660년에 이모한 작품이다. 영정 모사를 주관했던 안응창은 영정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흠모의 정을 더하여 당대 거유들의 찬문을 덧붙여 후손으로서의 자랑스러운 마음을 덧붙여 표현한 작품이다. 이 영정은 붉은색 옷에 검은 복두를 쓴 모습으로 상반신만 그렸다. 얼굴을 악간 돌려 좌측을 향한 우안 구분면으로 의습의 필치는 유약하고 군데군데 끊긴 흔적이 있다.

영정의 상단에는 여러 사람의 찬문이 덧붙여져 있다. 찬문을 쓴 사람은 김상헌(1570∼1652), 신익성(1588∼1644), 이경석(1595∼1671), 홍서봉(1572∼1645)으로 모두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들이다. 이 작품이 제작되었을 때는 대부분 타계한 상태이어서 이 찬문들은 영정을 모사하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앞서 지은 찬문들을 영정 모사시에 덧붙여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곡성 도동묘에 소장된 안향의 영정은 1660년경에 이모된 작품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이모본이지만 초상화로서는 오래되었고, 원작품과 이모본의 비교연구에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있고, 당대 문인들의 찬문을 덧붙여 역사적 가치가 있다.


사진.글 문화재청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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