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경상북도

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_조지훈 생가

기리여원 2020. 12. 3. 10:19

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 _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면   적 : 1,365㎡

지정일 : 1988.09.23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27, 외 (주곡리)

시   대 : 1963년 복원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표지판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표지석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조지훈과 주실마을

 

1920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한 조지훈은 소월과 영랑에서 비롯하여 서정주와 유치환을 거쳐 청록파에 이르는 한국현대문화사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한국문학사에 연속성을 부여해준 큰 시인이다.

 

호은종택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대문

 

호은종택(壺隱宗宅)

 

한국 근대문학의 큰 발자취를 남긴 조지훈의 생가로, 주실마을에 처음 들어온 입향조(入鄕祖) 조전(趙佺)의 둘째아들 조정형(趙廷珩)이 조선 인조때 지은 것이다.

'ㅁ'자형 집으로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누어져 있다. 호은종택에 사는 조씨를 가리켜 칼날같은 남인(南人)집안이라 하여 검남(劍南)이라 불렀는데, 이 집안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삼불차(三不借)*의 가훈을 철저히 지켜내려 왔다.

 

* '삼불차'는 세 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말로, '인물'을 빌리지 않고(즉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뜻), '재물'과 '문장'을 빌리지 않는 것을 이른다.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흙돌담

 

 

호은종택(壺隱宗宅) 표지석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대문의 후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정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전형적인 영남북부지방의 양반가옥의 형태이다.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굳게 잠겨있습니다.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정면 및 좌측입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좌측 및 후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후면 및 우측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우측입면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후면 굴뚝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사당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사당

 

 

호은종택 조지훈생가 (趙芝薰生家) 전경

 

2020.11.29.일요일, 주실마을 조지훈 생가

'청허(淸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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