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상남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_남해 향교

기리여원 2021. 5. 11. 09:42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_ 남해 향교 (南海 鄕校)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3.08.12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해읍 망운로10번길 51(북변리)

시   대 : 조선시대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현종 10년(1669)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남해 향교 (南海 鄕校) 표지판

 

 

남해 향교 전경

 

 

남해 향교 외삼문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하마비는 궁궐, 종묘, 서원 ,향교등의 입수에 세워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비롯한 탈 것에서 모두 내리라" 는 뜻을 담고 있는 석조물입니다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

 

 

유생들의 거처인  서재

 

 

남해 향교 서재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남해 향교  명륜당 정면

 

남해 향교

 

성현의 위패를 모신 국가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

 

향교의 중앙에 오성위, 송조 2현, 동국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1450년 하신(河紳)이 남해현령으로 재임할 때 봉강산 포교당터에 건립하여 개교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1669년(현종 10)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1892년(고종 29)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 ·서 영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1917년 대성전등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인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남해 향교 명륜당 현판

 

 

강학공간인 명륜당 좌측면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목조건축물이다.

 

강학공간인 명륜당 우측면

 

 

남해 향교 내삼문과 대성전

 

 

남해 향교 내삼문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 맞배지붕이며, 중앙 상부를 들어올려 솟을삼문형식으로 구성하였다.

 

남해 향교 동무

 

 

남해 향교 서무

 

 

남해 향교 대성전

 

대성전은 중앙에 오성위, 송조 2현, 동국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사당

 

남해 향교 대성전 현판

 

 

남해 향교 대성전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주심포 형식의 맞배지붕 목조건축물이다.

 

남해 향교 대성전 전면 기둥

 

 

 

남해 향교 배면

 

 

남해 향교 전경

2021.05.03, 남해읍 북변리 남해 향교

글 문화재청, 남해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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