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울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_간월사지 (2017.01.29.일요일), 보물 제370호_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기리여원 2017. 2. 9. 09:55

울주군 간월사지에 있는 문화재


 1.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2,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_ 간월사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5_간월사지 (澗月寺址) 


지정일 : 1997.10.09

시   대 :  신라


간월사터는 간월산 해발 215m정도에 동쪽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폐사된 이후 주위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었다. 1984년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뒤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금당, 축대, 주초석(柱礎石), 장대석(長大石), 2기의 삼층석탑이 확인되었다. 금당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금당지에서는 청동여래입상 등의 불상과 함께, 각종 기와, 토기 및 자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금당지 앞쪽으로 남북으로 위치한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사찰과 비교하여 금당과 탑 사이의 거리가 좁고, 남북으로 위치한 쌍탑의 거리가 멀다. 또한 금당의 지대석 보다 탑의 지대석이 높은 편이며, 이는 지형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통일신라시대 정형적인 삼층석탑으로 1층의 탑신부에는 인왕상과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인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 중 하나로 금강역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옥개석 끝에는 풍탁을 달았던 구명이 남아있다. 남탑은 북탑과 거의 비슷하지만, 1층 탑신 문 모양 안에 자물쇠를 새긴 점과 사리구명(공)이 북탑 보다 2배 큰 것이 특징이다.

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370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과 2기의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불교미술 연구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간월사지 (澗月寺址) 종합안내도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보호각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보호각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지정일 : 1963.01.21

시   대 : 신라


경상남도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의 간월사지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약간의 파손은 있지만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의 표현에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어깨는 좁아지고, 몸은 양감이 줄어든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옷은 얇으며 U자형의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과 신체의 풍만함과 좁아진 어깨 등에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표지판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표지석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울산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다. 받침인 대좌(臺座)의 일부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가 없어졌으나, 전체의 형태는 잘 남아 잇는 편이다. 목 윗부분은 떨어져 나간 것을 수리.복원한 것이고, 보호각은 1979년에 세운 것을 2009년에 수리하였다.


  옷은 U자 모양의 계단식 법의(法衣)이다. 손은 왼손을 무릎 위에 넣고 오른손을 내리어 땅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런 손모양을 향마촉지인이라고 한다. 불상을 모셔둔 대좌(臺座)는 삼단으로 되어 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화려한 편이다.


   어깨 부분이 약간 좁고, 몸은 풍만하나 양감(量感)이 부족한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높이는 1.35m이다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370호 _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_ 간월사지 (澗月寺址) 


    이곳은 간월사(澗月寺)의 터이다. 간월사는 신라 진덕여왕(眞德女王 : 재위 647~654) 때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처음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폐사(廢寺)되었고, 그 후 1634년(조선 인조12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현재 금당지(金堂址) 등의 건물터와 축대(築臺), 주초석(柱礎石), 장대석(長大石) 등이 남아 있다. 1984년의 발굴조사로 금당지는 가로13.72m, 세로10.72m 크기의 사각형으로 정면 3칸, 측면3칸 규모임을 확인되었다. 근처에서 청동여래입상, 청동보살입상, 기와조각, 질그릇조각 등도 출토되었다.


    보물 제370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萊坐像)과 두 기(基)의 석탑(石塔)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 불교미술(佛敎美術)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간월사지에 있는 2기의  3층석탑중 하나의 석탑


입구에서 땡겨서 촬영하다..


입구 바로 위에 있는 3층석탑






통일신라시대 정형적인 삼층석탑으로 1층의 탑신부에는 인왕상과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계속 문화재를 발굴중입니다.











간월사지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현재 울산대곡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금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



 금동보살입상



츨처 문화재청, 카다록, 울산대곡박물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