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등록문화재 제788 호 _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
수 량 : 8건
지정일 : 2020.06.24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일제강점기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는 1926년 12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 투척을 위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의 거사 계획 관련 편지 및 봉투이며 1924년부터 1925년까지 총 8건이다. 일제강점기 의열투쟁을 한 독립운동가가 직접 남긴 기록이 적어 세부적인 내용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석주 의사의 투쟁활동 경위와 일제 착취기관을 폭파하려던 계획의 구체적인 준비상황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해당 유물은 나석주 의사의 항일독립정신과, 일제강점기 의열단원들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쟁의 족적을 후대에 전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
나석주의 독립운동
나석주는 황해도 재령군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인 1910년부터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이 무렵 황해도에서 교육 활동을 하던 김구와 맺은 인연은 나석주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석주는 3·1운동 이후 황해도 일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1921년 중국으로 망명, 김구가 있는 상하이로 갔습니다. 나석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한편, 의열단, 병인의용대, 다물단 등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에 대한 열의를 보였습니다.
나석주는 1925년 독자적으로 국내에서의 의거를 준비하였고, 자금부족으로 중단했다가 다음 해 자금을 지원받아 실행에 옮겼습니다.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羅錫疇, 1892~1926)
국립중앙박물관은 제79주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독립운동가 나석주 의사(義士)의 편지를 특별공개합니다.
나석주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토지와 자본을 수탈하기 위해 운영한 핵심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 순직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나석주 의사 편지>에는 일제(日帝)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는 그의 각오와 의거의 준비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바친 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
의열단원으로서의 결심을 김구에게 알리는 편지(2024.9.11)
나석주는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측근으로 할동하다가 1924년 베이징(北京)에서 이승춘(이화익)을 통해 황익수(황해관)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이 편지는 나석주가 의열단원으로서 의열투쟁을 진행할 결심을 김구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폭탄 투척 의거 계획을 김구에게 알리는 편지(2025.7.28)
나석주가 서울에서의 폭탄 투척 의거를 결심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김구에게 알리고 계획에 대한 지지와 비밀 유지를 당부하는 편지이다. 나석주는 주도적으로 의거를 추진하면서도 김구와 마지막까지 긴밀하게 연락하였다
이승춘에게 폭탄 투척 의거 동참을 권하는 편지(1925.7.28)
나석주가 의열단 동지인 이승춘(이화익)에게 폭탄 투척의거를 함께 하자고 간곡히 권하면서 비밀 유지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는 비밀 유지를 위해 같은 날 김구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하여 보냈다.
폭탄 투척 대상을 정해 이승춘에게 알리는 편지(1925.8.4)
나석주가 폭탄 투척 대상을 정하여 이승춘(이화익)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나석주는 대표적인 민족 수탈 기관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조선은행을 들었다. 그 중 서로 가까이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을 함께 폭파하는 것이 혼자서 실행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
귀국 배편을 구하기 어려움을 이승춘에게 알리는 편지(1925.8.12)
나석주가 배영운동 이후 영국의 조차지인 웨이하이(威海)와 옌타이(煙台) 사이의 배편이 원할하지 않아 귀국 배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이승춘(이화익)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나석주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걸어서라도 이도(俚島)에 가서 배편을 구해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의열투쟁의 필요성을 이승춘에게 알리는 편지(2025.8.14/8.25)
나석주는 8월 14일에는 귀국 배편을 구두로 예약했음을 알리고, 25일에는 의거에 대한 이승춘(이화익)의 견해를 물으며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이승춘은 조직 구성을 우선으로 한 데 비해, 나석주는 목숨을 바치는 의열투쟁이 조국의 독립에 보탬이 된다고 보았다.
황해관에게 의거 자금을 요청하는 편지(1925.8.26)
나석주가 귀국 선박을 예약했으나 상하이(上海)에서 보내기로 한 황해관(황익수)의 자금이 도착하지 않아 어찌된 일인지 묻고 속하 얼마간 비용이라도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결국 자금이 전달되지 않아 거사 추진이 일시 중지되었다. 이듬해 김창숙의 자금지원으로 실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2024.08.03,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실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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