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국가등록문화재 제509-2호_대한매일신보(2012-2)

기리여원 2025. 8. 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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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509-2호 _ 대한매일신보(2012-2) (大韓每日申報(2012-2))

 

수   량 : 1식 

지정일 : 2012.10.17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시   대 : 1904.7.18~1910.8.28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 1904 7월에 영문판(‘The Korea Daily News’,4)과 한글판(‘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2) 6면으로 창간한 신문으로, 1905 8 1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영문판 2개의 신문으로 분리됐다.

영국인 소유의 신문이었기 때문에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리면서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항일운동의 본거지로서 역할을 담당했고, 양기탁을 비롯하여 논설진으로 박은식, 신채호 등이 참여한 한말 최대의 민족지이다.

1909 5월 배설이 사망한 이후에는 영국인 만함(萬咸, Alfred W. Marnham)이 경영을 맡았으나, 한일 강제 합병 후에는 제호를 매일신보로 바꾸어 조선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었다.

항일의병투쟁,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 등과 깊은 관련이 깊은 한국민족운동사의 핵심적인 자료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한매일신보(2012-2) >  _ 1906, 35×51cm, 국립고궁박물관 

 

< 대한매일신보. 1906년 7월 17일자에 실린 혈죽도에 관한 기사이다. 민영환 순국 이후 피 묻은 의복을 보관하였던 방에서 자란 네 줄기의 대나무(혈죽)에 관한 일화와 함께 양기훈이 그린 「혈죽도 」목판화가 신문 전면에 게개되었다. 이를 통해 알려진 혈죽을 소재로 다양한 혈죽도와 작품이 만들어졌다.

대한매일신보(2012-2)  _ 1907, 35×51cm,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매일신보> 1907년 1월 16일자에 박제순과 하야시일본 공사간의 조약(을사늑약)에 광무황제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밀서가 게재되었다. 이는 대한제국의 주권 수호 의지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25.08.16, 덕수궁 돈덕전_빛을 담은 항일 유산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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