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481호_부여 홍산현 관아

기리여원 2025. 9. 27. 15:44
728x90

사적 제481호 _ 부여 홍산현 관아 (扶餘 鴻山縣 官衙)

 

면   적 : 30,562㎡

지정일 : 2007.07.31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일원 (남촌리)

 

홍산현 관아는 비홍산 끝자락의 완만한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관아의 핵심시설인 객사와 동헌이 비교적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관아의 규모와 형태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객사는 남향, 동헌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아영역의 발굴조사를 통해 북측 경계의 담장렬이 확인되어 전체적인 내아영역의 규모를 일부 파악하였으나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전체 영역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홍산현 관아와 관련된 중요 기록은 여지도서(1757~1765), 홍산읍지(영조이후), 호서읍지(1892~1895), 서울대 규장각 소장 홍산현지도를 들 수 있다.

부여 홍산현 관아 (扶餘 鴻山縣 官衙) 표지판

 

부여 홍산현 관아 전경

 

외문루(집홍루)

 

외문루는 홍산현 관아의 정문으로 건물의 이름은 집홍루이다.

집홍루는 1871년(고종 8)에 다시 세운 것으로 원래의 건물은 1964년 5월 부소산성 내 영일대가 있던 자리로 옮겨 영일루라 불린다. 이곳의 집홍루는 1994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집홍루는 2층의 문루로 관아의 중심 영역인 동헌이 동쪽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홍루 또한 지형에 순응하여 동쪽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부여 홍산현 관아 비석群

 

관청

 

관청은 관아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공급하던 곳이다.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서읍지 」에 홍산현 관아의 관청은 7칸 규모의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관청은 조선 시대 기록에 따라 2015년 앞면 7칸, 옆면 1칸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되었다.

책방

 

책방은 고을 수령의 비서 업무를 담당했던 곳이자 자제들을 교육했던 곳이다.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서읍지 」에 기록된 책방의 규모는 앞면 7칸, 건물의 이름은 유한당(遊翰堂)이라고 하였다. 책방은 조선 시대 기록에 따라 2015년 앞면 7칸, 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되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8호 _ 홍산형방청 (鴻山刑房廳)

 

이 건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홍산현(鴻山縣)의 관아(官衙) 건물 중의 하나인 형방청(刑房廳)이다.

고종(高宗) 8년(1871)에 개건(改建)한 민가풍(民家風)의 목조건물로, 당시의 현액명은 비홍추청(飛鴻秋廳)이다. 10칸 크기의 ㄷ자형 동향집이다. 원래 중앙 대청과 남쪽 딸림채는 마루를 깔았었다. 북쪽 안채에는 2분합문(二分閤門)의 띠살문을 단 1칸짜리 온돌방 2개를 들였다. 자연석 주춧돌에 방주(方柱)를 세웠는데 공포(拱包)가 없는 납도리집이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놓고 창방(昌枋)을 짜돌렸으며 창방 위에는 주칸(柱間)마다 4개씩의 소로(小累)를 배치하였고, 그 위에 장혀와 외목도리를 얹었다. 남쪽 딸림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에 전면에 빈칸짜리 퇴칸을 달았다.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가구(架構)는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량(宗樑)과 내목도리를 걸었으며, 이 종량 위의 제형대공(梯形臺工)은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을 가설하였고, 처마는 부연이 없는 홑처마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 중 형방청은 그 예가 희소한 것으로 문화유산적 보존가치가 크다

홍산형방청 (鴻山刑房廳)

 

사령청(승령청)

 

사령청은 관청에서 심부름 등을 담당했던 하급 관리인 사령들의 집무실이다.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서읍지 」에 기록된 사령청의 규모는 12칸, 건물의 이름은 승령청(承鈴廳)이라고 하였다. 또한 헌병총청사 배치 약도(1914)에 'ㄱ자' 형 평면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평면도가 확인된 바가 있다. 사령청은 앞선 기록에 따라 2015년 'ㄱ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되었다.

홍성 관아 내삼문(內三門)

 

내삼문은 홍산현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을 출입하던 정문이다.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서읍지 」에 내삼문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규모는  5칸, 건물의 이름은 홍산아문(鴻山衙門)이라고 하였다, 내삼문은 조선 시대 기록에 따라 2015년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복원되었다.

내삼문 처마에 걸려 있는 홍산아문(鴻山衙門) 현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_홍산동헌 (鴻山東軒)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잡은 후 관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 걸쳐 관청건물을 정비하였다. 그 일환으로 고종 8(1871) 정기화 군수가 세웠다. 해방 후 홍산지서로 사용하다가 1984년에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앞면 7·옆면 2칸의 크기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크기가 다른 온돌방을 설치했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관청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동헌 앞에 있는 이정우 가옥은 관아문과 형방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홍산동헌 (鴻山東軒) 좌 · 우측면

 

홍산동헌 (鴻山東軒) 대청마루

 

제금당(製錦堂)과 동헌( 東軒) 현판

 

홍산동헌 (鴻山東軒)의 건물이름은 제금당(製錦堂)입니다.

향청(괴죽헌)

 

향청은 조선시대 지방자치 기관으로 좌수(座首), 별감(別監)의 집무소로 쓰였으며, 수령을 보좌하고 수령에 대한 자문기관 역할을 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서읍지 」에 기록된 홍산현 관아 항청의 규모는 19칸, 건물의 이름은 괴죽헌(槐竹軒)이라고 하였다. 향청은 조선시대 기록에 따라 2024년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복원되었다.

 

 

▼여기서부터는 2022.11.06일에 답사한 홍산객사입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_ 홍산객사 (鴻山客舍)

 

조선 헌종 2년(1836) 홍산군에 세운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국왕의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올리는 한편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중앙관리를 접대하고 유숙시키던 곳이다.

 

중앙에 정당이 있고 양쪽에 익실이 있다. 정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앞면은 문짝없이 트였고 옆면과 뒷면은 벽을 둘러 막았다. 내부는 통칸으로 트인 넓은 대청마루이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동익실은 앞면은 개방하여 툇마루를 놓았고 오른쪽 3칸은 대청·왼쪽 2칸은 온돌방을 들였다. 서익실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동익실과 같은 구조이다. 그러나 온돌방 대신 마루방을 들였고, 대청은 앞면 뿐 아니라 옆·뒷면까지 모두 개방하였다. 익실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며, 정당보다 한층 낮게 되어있다. ‘비홍관(飛鴻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객사기(客舍記)」가 남아있다.

 

홍산 객사는 동·서익실의 규모가 달라 좌우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으며 객사 건물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건물이다.

홍산객사 (鴻山客舍) 우측면

 

홍산객사 (鴻山客舍) 좌측면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 _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扶餘 鴻山客舍 銀杏나무)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홍산객사」 우측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부분은 암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것이 많은데 홍산객사은행나무는 약 750년 된 수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다.

 

더불어 홍산객사의 건립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홍산객사 및 주변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사실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나무로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높다

 

2025.09.04,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부여 홍산현 관아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