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향토유적

논산시 향토유적 제26호_백일헌 영당(가곡영당) , 이삼장군 묘, 이삼장군 재실,

기리여원 2025. 12. 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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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향토유적 제26호_백일헌(가곡) 영당 [白日軒(嘉谷)影堂 ]

 

수 량 : 1곽
지정일 : 1996.12.30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 531-1
시   대 : 조선시대

 

백일헌 영당은 조선시대 무관(武官) 이삼장군(李森將軍, 1677~1735)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만, 『조선환여슬람(朝鮮寰與勝覽) 』에 "노성면 주곡리에서 제사를 모시고 영정각이 노성 석종리에 있다. "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 이미 영당이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군은 함평인으로서 호(號)는 백일헌(白日軒)이며,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영조가 장군의 높은 뜻을 기려 친히 호를 백일헌이라 내렸다. 윤증(尹拯)의 제자였으며, 숙종 31년(1705)무과에 급제하고 영조 3년(1727) 훈련대장이되고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여 분무(奮武)공신에 책록되어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졌다. 후에 병조판서와 공조판서 등에 올랐다. 영당 뒤에는 장군의 묘가 있으며 앞에는 재실(齎室)이 있다

백일헌(가곡) 영당 표지판

 

백일헌(가곡) 영당

 

이삼장군(李森將軍)의 신도비(神道碑)

 

백일헌(가곡) 영당 외삼문(外三門)

 

외삼문(外三門) 처마에 걸려있는 가곡영당(嘉谷影堂)

 

백일헌영당의 사당인 백일헌(白日軒)

 

백일헌 영당은 조선시대 무관(武官) 이삼장군(李森將軍, 1677~1735)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다.

<이삼 초상(李森 肖像) > _ 18세기 초, 백제군사박물관

매사냥을 하다 잠시 휴식하는 모습을 담은 야외 초상화

전립(戰笠)을 쓰고 전복(戰服)을 입은 장수의 모습을 한 이삼이 오른쪽 어깨 위 노송에 앉아  매를 두고, 한쪽 다리를 꼬고 바위에 걸터앉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상단에는 "이 장군을 청담이 그리다,(李將軍淸潭寫)"라는 화제가 있다.  "청담"은 그림을 그린 지방 화사 또는 화승의 호로 추정된다.
전립은 무관의 신분과 품계를 상징하는 모자로, 꼭대기에는 직품에 맞춘 백색 옥 정자(頂子)가 달려 잇다. 전복은 실전용이 아닌 예복에 가까운 무관 복식으로, 지휘관의 위엄을 드러낸다.

손에는 지휘봉인 등채를 들고, 허리에는 단도를 찼으며, 왼손 엄지에는 활깍지를 착용하였다. 『백일헌유집 』에 의하면 이삼이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은 뒤, 활깍지를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삼의 얼굴은 「화상이모소첩 」에 나타난 모습보다 부드럽게 표현되었지만, 이목구비는 여전히 단정하고 강인한 인상을 준다. 적갈색 선으로 윤곽을 정리하고 눈 주변, 뺨, 팔자주름 등에는 음영을 더해 입체감을 살렸으며, 전복 위 조끼에는 모란과 학 무늬, 전립 챙에는 화문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명 · 청대에 초상화가 하나의 유행 양식으로 자리 잡았고, 인물과 배경을 다른 화가가 분업해 그리는 합작 형식도 흔했다. 그러나 조서에서는 이 같은 야외 초상화가 매우 드물어, 「정약용 초상 」이나 무관 전일상을 주인공으로 그린 김희겸의 「석천한유도(石泉閑遊圖) 」정도만 전한다.

 

2025.12.03, 한국유교문화진흥원_양무공신 이삼

전시자료

<백일헌 현판(白日軒 縣板)>

영조가 이삼에게 하사한 편호

 

1734년(영조 10) 10월 12일,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여 처형된 조세추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남덕하가 이삼을 모함하자, 이삼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장을 올렸다. 이에 영조는 "이 일과 경의 관계는 이미 밝은 해처럼 분명히 밝혀졌다. 제멋대로 내뱉는 말이 어찌 경과 상관이 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라."라는 비답을 내려 위로하고, "충성은 밝은 해를 꿰뚫을 만하다."고 평하며 '백일(白日)'이라는 편호를 하사 하였다.

 

2025.12.03, 한국유교문화진흥원_양무공신 이삼

전시자료

백일헌영당의 사당인 백일헌(白日軒)

 

백일헌의 건물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2칸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이삼장군(李森將軍)의 묘입니다.

 이삼장군(李森將軍)의 묘 전경

 

이삼장군(李森將軍)의 묘

 

이삼장군(李森將軍, 1677~1735)

 

 이삼은 조선 영조 때의 무관으로 본관은 함평이고, 자는 원백이며,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05(숙종 32)년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능하였다.

경종때 포도대장으로 공을 세웠고, 1725년(영조 1) 어영대장을 지냈는데 경종 때 죄인을 심문한 사건에 연루되어 이정신(李正臣)과 함께 경남 비양에 귀양갔다. 1727년 훈련대장이 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은군(咸恩君)에 피봉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삼장군(李森將軍)의 묘

 

이삼장군 묘의 장명등

 

이삼장군 묘의 혼유석, 상석, 향로석

 

이삼장군 묘의 묘비

 

이삼장군 묘비에는 "有明朝鮮國大司馬大將軍咸恩君 贈左贊成判義禁府院君李公森墓 贈貞敬夫人晉州柳氏袝左 貞敬夫人順天張氏袝右(유명조선국대사마대장군함은군 증좌찬성판의금부사원군이공삼묘 증정경부인진주유씨부좌 정경부인순천장씨부우)"라고 새겨져 있다.

이삼장군 묘의 문인석 한쌍

 

이삼장군 묘의 망주석 한쌍

 

이삼장군 묘의 후경

 

 

이삼장군 재실입니다.

논산시 향토유적 제27호_이삼장군 재실(李參將軍 齋室)

 

수   량 : 1동

지정일 : 1995.01.08

소재지 : 논산시 상월면 게룡산로297번길 56-11

시    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 훈련대장(訓鍊大將), 병조판서(兵曺判書) 등을 역임한 이삼장군의 재실이다. 장군의 묘역(墓域)이 조성된 뒤인 174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문간채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룰 이루고 있다.

이삼장군 재실은 전통적인 재실건물로 주초석은 자연석재를 사용하였고, 가구는 5량 건물로 민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홀처마 건물이다. 안채건물은 중앙 2칸에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대청마루 좌측으로는 전면에 누마루를 설치하여 마루 밑에 함실아궁이를 두었다. 후면쪽으로는 방을 구성하였는데, 대청마루 우측으로는 3칸에 이어 방을 둔후 부엌을 두고 있다. 문간채는 안채 아래로 낮게 설치하였고, 대문과 광채, 창고, 화장실 등을 두고 있다.

이삼장군 재실인 사모재(思慕齎)

 

2025.12.07, 백일헌 영당(가곡영당) 및 재실

글 문화재청, 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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