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호_조헌사당(표충사)

기리여원 2026. 3. 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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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호 _ 조헌사당(표충사) (趙憲祠堂(表忠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금산군 수심대길 30 (복수면)

 

조헌사당은 원래 영조 10(1734)에 곡남리 진동산에 창건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유림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위치에 다시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당은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조헌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며 유학자이다. 조선 명종 20(1565)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조 1(1568) 처음으로 관직에 올라 교수를 역임하였고 선조 5(1572)에는 교서관에 속하였다. 선조 15(1582)에는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었다. 그러나 왕의 진노를 사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제자 양성과 학문을 닦는데 전념하였다. 선조 25(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등 1,600여명을 모아 청주성을 수복하였으나 전라도로 진격하던 중 왜군을 만나 모두 전사하였다.

조헌사당(표충사) 전경

 

조헌사당(표충사) 협문

 

조헌사당(표충사) 

 

임진왜란 당시 금산성전투에서 순절한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 선생을 모신 부조사우이다.

부조사우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神主)를 영구히 모시도록 조정(朝廷)에서 지정한 부조묘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선생은 주로 옥천군 안읍 밤티(沃川郡安邑栗峙)에서 생활하였지만, 자주 이 지역에 왕래하면서 후손들에게 이곳에서 살 것을 분부하였다고 한다

조헌사당(표충사) 

 

조헌사당의 건물규모는 정면 3, 측면 2칸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수심대에서 본 조헌사당(표충사) 후면

 

수심대(水心臺)

 

조헌사당 뒤편에는 선생이 이름을 짓고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의 글씨로 알려진 수심대(水心臺)라고 새겨진 글자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2026.03.04, 금산군 복수면, 조헌사당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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