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아산 맹씨 행단

기리여원 2026. 3. 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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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09호 _ 아산 맹씨 행단 (牙山 孟氏 杏壇)

 

면   적 : 8,116㎡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초기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고려말 · 조선초의 문신으로, 최영 장군의 손주사위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내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의 벼슬을 했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조정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였다.‘행단(杏壇)’이란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ㄷ자형 맞배집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일반 백성이 살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집의 마당에는 6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 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다.이 집을 통해 조선 전기 민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아산 맹씨 행단 표지판

 

아산 맹씨 행단 표지석

 

 

▼ 고불맹사성기념관입니다.

고불맹사성기념관

 

<문정공 맹사성 영정> _ 정부표준영정 제90호 (2008.02.04), 작가 권오창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

 

본관은 신창(新昌), 호는 고불(古佛), 시호는 문정공(文貞公) 조선시대 세종대왕 떄의 상신으로 5부 판서와 좌 ·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7일간 단식하고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판서와 정승의 높은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검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다닌 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로 그 이름이 높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25호 _ 전세 맹고불 유물 (傳世 孟古佛 遺物), 복제품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유품 5(옥적, 백옥방인, 채석포도문일월연, 수정죽절비녀, 목칠도형배)이다. 맹사성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후,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좌랑을 시작으로 1427년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있으면서태종실록편찬의 감수를 맡았는데, 세종임금이 실록을 보고싶어 하자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사관이 두려워 일을 할 수 없다.” 하며 반대했다. 집을 들어오고 나갈때는 항상 소를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유품 5점 중 옥적은 피리의 일종으로 백옥으로 만든 것이며, 백옥방인은 손잡이에 당사자를 큼직하게 새긴 옥도장이다. 채석포도문일월연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자색 벼루의 일종이며, 수정죽절비녀는 수정을 대나무 밑둥처럼 다듬어 머리를 만들고 몸통에 구리판을 말아 끼운 비녀이다. 목칠도형배는 해당화의 밑둥치로 만든 표주박으로, 휴대하여 쓰는 음료수잔이다.

유품들 가운데 옥적과 도장에 새긴 시문구 등은 음악과 시에 조예가 깊었던 맹사성선생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 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 기리여원에서  국가민속문화재 전세 맹고불 유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충효세업 청백가성(忠孝世業 淸白家聲)  어필사액 현판(御筆賜額 縣板) _ 1750년(영조 26) 9월 22일 어필 하사

 

영조가 온양행궁에 머물 때 내린 글씨를 후손들이 새겨 만든 현판이다.

충성과 효행을 대대로 함써 왔으며, 청렴과 결백은 가문의 영광이니라.

교육관인  '자하당(紫霞堂)'

 

고불 맹사성 선생과 아산 맹씨재단 관련 세미나 개최 및 청렴교육 공간입니다.

화강석으로 만든 고불 맹사성 의자

 

검은 소를 타고 다니는 고불 맹사성 선생의 동상

 

청백리 고불 맹사성 선생 조혐물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의 기본과 청백리의 대명사인 맹사성의 청렴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맹사성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검소한 평상복 차림과 말이나 마차가 아니라 검은 소를 타고 다닌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아울러 대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풍류를 알고 예악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아산 맹씨 행단으로 갑니다.

아산 맹씨 행단 전경

 

청백리 고불 맹사성기념관

 

현재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산 맹씨 행단의 문간채

 

충청남도 보호수 제 8-91호 _ 쌍행수(雙杏樹)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 1380여 년경에 심은 쌍행수로 수령 640년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 가을 노랗게 단풍이 물들 때 다시 찾아 와야겠습니다.

아산 맹씨 행단 (牙山 孟氏 杏壇)

 

본래 '행단'이란 말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강학을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모아 강학하였기에 '맹씨행단'이라 불리게 되었다. 행단내에는 고택, 세덕사, 쌍행수, 구괴정이 남아 있습니다.

아산 맹씨 행단 좌측면과 후면

 

아산 맹씨 행단의 구조는 중앙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앞뒤에 문이 달려 있다. 좌 우측 각각 1칸에는 전면 방2, 후면 방2로 구성된 보기 드문 고택의 구조이다.

 

세덕사(世德祠) 전경

 

세덕사(世德祠)

 

세덕사는 두문동 72현인 맹유(孟裕)와 맹희도(孟希道), 조선조의 정승인 맹사성(孟思誠)의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맹유는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하였고, 맹희도는 벼슬을 버리고 한민(閒民)으로서 충절을 지켰다. 맹사성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하다.

세덕사(世德祠)  현판

 

세덕사(世德祠) 정측면

 

세덕사 건물구조는 앞면 3칸 · 옆면 3칸으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 구괴정으로 갑니다.

구괴정으로 가는 협문

 

협문을 지나 우측 소나무 숲에 가시면 구괴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괴정앞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홉그루에서  7그루는 고사하고 2그루만 남았습니다.

구괴정앞 느티나무

 

구괴정(九槐亭)

 

맹사성, 황희, 권진 세 정승이 느티나무 세 그루씩 심고 정사를 논했던 정자라 하여 구괴정 또는 삼상당이라고 한다.

구괴정(九槐亭) 정측면

 

구괴정의 건물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2칸으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구괴정(九槐亭) 좌측면

 

삼상당(三相堂)과 구괴정(九槐亭) 현판

 

구괴정에서 바라본 아산 맹씨 행단 전경

 

 

▼신창맹씨세거지비와 정려입니다.

 아산 맹씨 행단 진입로 우측에 세운 신창맹씨세거지비(新昌孟氏世居地碑)

 

신창맹씨 정려(旌閭)

 

우측부터 맹희도(孟希道), 맹사성(孟思誠), 맹희(孟喜) 숙부인 양주조씨(楊州趙氏), 맹흠규(孟欽圭) 정려(旌閭) 입니다.

 

2026.03.09, 아산시 배방읍, 아산 맹씨 행단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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