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근본도량
천년고찰의 신비
부석사
신라 문무왕 16년(서기676년)에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찰이여, 호국사찰임. 현재 이곳에는 국보5점과 보물 6점, 도유형문화재2점이 소장되어 있는 사찰이다.
국보 제18호_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 일주문
매표소에서 천왕문까지가 은행나무의 길입니다. 10월 마지막주 일요일에서 11월 첫째주 일요일까지 7일간이 단풍의 절정기간입니다.
아울러 영주 사과 축제기간이기도 합니다..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 일주문 편액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 일주문 편액
편액은 효남(曉楠) 박병규(曉楠 朴秉圭, 1925~1994)선생의 글씨임.
효남 박병규 선생은 달성군 하빈면 묘골 사육신 박팽년 선생의 후손으로 선대가 6대 진사를 지낸 명문가의 후손입니다
천천히 걸어봅니다.. 이렇게도 은행나무가 곱고 아름다울수가 있을까~
부석사 중수기적비
천왕문으로 가는 은행나무길 왼쪽에 위치함.
보물 제255호 _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지정일 : 1963.01.21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17 부석사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입구에 1m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기둥머리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는 한 돌로 된 정사각형의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주변에는 연꽃을 장식하고, 윗면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치고 있다.
대체로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또한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255호 _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합니다. 4.3m 높이되는 두개의 기둥으로 하늘을 향해 곧게 쭉 뻗어있는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경쾌한 수직적 상승감을 보여줍니다.
부석사 천왕문(浮石寺 天王門)
부석사 천왕문(浮石寺 天王門) 편액
편액은 효남(曉楠) 박병규(曉楠 朴秉圭, 1925~1994)선생의 글씨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_ 부석사삼층석탑 (浮石寺三層石塔)
지정일 : 1979.01.25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북지리)
부석사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옛 절터에 남아 있던 두 탑으로, 1966년 이곳 부석사로 옮겨 세웠다. 탑을 옮길 때 세워 놓은 비석에 의하면 서쪽의 탑은 익산왕궁리오층석탑(국보 제289호)에서 나누어 온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다.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은 크기만 약간 다를 뿐 형식은 같아서, 모두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살짝 들려 가벼움을 실었다. 꼭대기에는 후에 보충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지붕돌 밑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기품을 잃지않은 모습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석사 안양루
국보 제18호_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부석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국보 제18호 _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부석사의 본존불인 무량수전은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는 배흘림기둥(기둥머리 34cm, 중간 배흘림 부분 49cm, 기둥밑 44cm)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강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입니다.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으며 건축미가 주는 고색창연합이 더욱 고풍스러운 느낌을 갖게하여 천년 고찰의 면목을 실감케 한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편액은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의 글씨임.
국보 제17호 _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국보제17호 _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빼어난 조각 솜씨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조각 솜씨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서려 있습니다. 높이 2.97m의 8각 기둥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상륜부(위받침돌)을 얹어 놓았습니다. 특히, 화사석(火舍石) 4면에 새겨진 연꽃봉우리를 쥐고 선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 석등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조각물로 지칭되고 있다
국보 제17호 _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국보 제45호 _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榮州 浮石寺 塑造如來坐像)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고려 시대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시고 있는 소조불상으로 높이 2.78m이다. 소조불상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것인데,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며,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는데, 평행한 옷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릎 아래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런 형태의 옷주름은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이 작품이 고려 초기 불상들과 같은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불상을 모신 장소가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은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지금의 손모양은 조선시대에 불상의 파손된 부분을 고치면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원형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장식하였으며, 작은 부처를 달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온화함이 사라진 근엄한 표정과 평행의 옷주름 등에서 형식화된 모습이 보이지만 고려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며, 특히 소조불상이란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
'부석'은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바위로서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 하여 뜬돌, 곧 '부석(浮石)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보물 제249호 _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지정일 : 1963.01.21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에 2개씩의 조각을 두고, 위층 기단에는 하나씩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문무왕 16년(676)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래층 기단의 너비가 매우 넓고, 1층 몸돌 또한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서 장중해 보인다.
1956년 해체하여 복원할 때 철제탑, 불상의 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고 이 때 일부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석탑은 법당의 동쪽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보물 제249호 _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삼층석탑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입니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무량수전 아미타불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이 극락왕생지를 맞이하는 형상이라고 볼 때 이 탑은 곧 동쪽 사바세계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른 석탑과 달리 비틀려 있는데 그 방향이 숲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조사당으로 발길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건실하고도 장중한 느낌이 듭니다
국보 제19호 _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북지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건물 안쪽의 좌우에는 사천왕상·보살상 등 고려 후기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이것들은 고려시대 회화 가운데 매우 희귀한 것으로,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그림 중 하나였다. 지금은 보호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으며,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본떠 그린 그림을 놓아 당시 벽화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선비화
조사당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의 전설 꽃 선비화(禪扉花, 골담초)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아 자란 곳이라고 합니다
조사당 편액
국보 제19호 _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취현암
응진전과 자인당으로 갑니다.
부석사 응진전
부석사 자인당
보물 제220-1호,보물 제220-2호(좌,우) _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지정일 : 1963.01.21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1 부석사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서 양식상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1636호 _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 (榮州 浮石寺 石造釋迦如來坐像)
지정일 : 2010.02.24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자인당에는 거의 같은 규모의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2구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며, 1구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의 도상특징을 보여준다.
이 불상은 1958년 11월 부석사 동쪽의 약사곡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인당에 이미 보물로 지정된 두 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동그란 얼굴, 항마촉지인의 수인과 꽃문양이 조각된 승각기,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옷주름의 표현, 높은 삼단대좌에 부조된 향로와 7사자, 합장 한 보살상 등에서 통일신라 9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특히 대좌 뒷면에 조각된 지장보살상은 특이한 예로 주목되며, 높고 화려한 대좌는 양감이 강조된 불상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거의 훼손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삼단대좌와 불상은 다소 장식화 경향을 보이는 통일신라 9세기의 전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부석사 단하각
부석사 삼성각
부석사 선묘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_ 부석사원융국사비 (浮石寺圓融國師碑)
부석사에서 가정 먼저 일출을 볼 수 있으며 조망이 시원시원합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_ 부석사원융국사비 (浮石寺圓融國師碑)
지정일 : 1979.01.25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경내 (북지리)
부석사 한켠에 지어진 비각 안에 놓여 있는 비로, 고려시대 승려인 원융국사 결응을 기리고 있다.
결응은 12세에 출가하여 복흥사에서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으며, 28세에 대덕(大德: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킴)이 되었다. 고려 정종 7년(1041)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문종 7년(1053) 4월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원융’이라 내리었다.
비는 바닥돌 위에 거북받침을 마련하여, 비몸을 세운 후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거북받침은 원래의 것이 아니며, 비몸은 깨어지고 갈라져 있는 것을 이어 붙인 것이다. 바닥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을 옅게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다. 거북받침돌은 많이 닳긴 하였으나 조각솜씨가 훌륭하며, 머리가 용 머리화 되었으나 마치 돌사자처럼 보인다. 등에는 선명한 6각무늬가 덮혀 있으며, 무늬마다 ‘王’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비를 세운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결응이 문종 7년(1053)에 입적하였으므로 그 즈음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몸의 파손으로 첫머리와 끝부분의 비문내용을 살피기 힘드나,『조선금석총람』에 그 전체가 실려 있어 내용 파악은 가능하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_ 부석사원융국사비 (浮石寺圓融國師碑)
고려시대 승려인 원융국사 결응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세심하게 공들인 조각수법이 돋보입니다. 부석사 동쪽 언덕에 있는 이 비에는 의상 당대의 부석의 모습,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받은 의상이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 등이 밝혀져 있습니다. 결응이 1053년(문종7)에 입적하자, 왕이 원융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한적한 곳에 자리한 이 비는 부석사에서 제일 먼저 해맞이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석사 지장전
부석사 장경각
이 곳에 국보 제46호_조사당 벽화와 보물 제735호_고려 각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추후 성보박물관이 개관되면 볼 수 가 있습니다. 금년 12월이면 볼 수 있을까?
또한 고려 각판은 소수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볼 수가 있습니다.
부석사 범종각
부석사 관음전
출처 문화재청, 팸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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