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계룡산 갑사
갑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
1, 국보 제298호 _ 갑사 삼신불괘불탱
2. 보물 제256호 _ 공주 갑사 철당간
3. 보물 제257호 _ 공주 갑사 승탑
4. 보물 제478호 _ 갑사 동종
5. 보물 제582호 _ 월인석보목판
6. 보물 제1651호 _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 및 복장유물
7.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_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
8.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 _ 갑사석조보살입상
9.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_ 갑사사적비
10.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_ 갑사강당
11.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갑사 대웅전
12.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_ 갑사 대적전
13.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_ 갑사 대웅전 소조삼세불
14.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_ 갑사 내원암
15.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0호 _ 갑사 대적전 목조암타여래삼불상
16.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9호 _ 공주 갑사 내원암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17. 충청남도 기념물 제15호 _ 영규대사묘
18.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 _ 갑사 표충원
19.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 _ 갑사 삼성각
20.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4호 _갑사 팔상전
21.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5호 _ 갑사중사자암지삼층석탑
2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 _ 영규대사비
23.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8호 _ 천진보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갑사의 창건연혁
통일신라시대에는 五嶽 중 西嶽, 고려시대엔 妙香山 上嶽, 지리산 下嶽과 더불어 三嶽 중 中嶽으로 일컬어지는 명산, 鷄龍山의 서편 기슭인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한 갑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고 400년이 지나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펼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사리보탑에 있던 부처님의 사리를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천왕들로 하여금 마흔여덟 방향에 봉안케 하였다. 이때 북쪽을 관장하던 다문천왕(비사문천욍)이 동방 남섬부주 가운데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 절벽에 봉안한 것이 지금의 천진보탑이다. 그 후 고구려 승려 阿道和尙이 신라 최초의 사찰인 선산 排李寺를 창건하시고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찾아 가보니 천진보탑이 있었다. 이로서 탑 아래 배대(拜臺)에서 예배하고 갑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가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이다. 556년(위덕왕 3년) 혜명대사가 千佛殿과 眞光明殿 大光明殿을 중건하고,,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칸의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으로 전국의 화엄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어 國中大刹로 크게 번창되었다.
갑사는 岬寺, 岬士寺, 鷄龍岬寺 등으로 불리어 지다가 으뜸 또는 첫째란 뜻의 지금의 명칭은 18세기말 鷄龍甲寺로 불리어지고 있고, 1911년 제정된 사찰령에 따라 마곡사의 首말사가가 되었고 경내에는 19동의 전각과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06:30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고 있다.
06:30분에 매표소를 통과한다. 관리요원이 출근전이라 주차요금, 입장요금은 패스다.
오늘은 갑사에서 큰 행사가 있는 날이다.
순국 425주년 계룡산 갑사 영규선사 대제가 있는 날, 그리고 어르신 초청 만발공양 및 음악회도 연다.
계룡산 갑사 일주문
갑사 및 계룡산은 여러번 왔지만 오늘은 결혼식이 있어서 갑사만 답사후 서울로 바로 상경한다,
계룡산 갑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는 평지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제 앞에는 관람객이 한 분도 없다. 첫번째로 입장한다.
계룡산 갑사 일주문 편액
갑사의 단풍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그래서 춘마곡 추갑사라 했던가. 지금이 단풍 절정이다.
사천왕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_ 갑사강당 (甲寺講堂)
갑사는 계룡산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의 사찰로, 백제시대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크게 다시 지으면서 신라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
갑사강당 (甲寺講堂) 현판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
갑사 동종 (甲寺 銅鐘) 보호각
보물 제478호 _ 갑사 동종 (甲寺 銅鐘)
갑사동종(甲寺銅鐘)은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 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하나의 몸체로 이어져 서로 반대로 머리를 돌린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물결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범자를 둥글게 돌아가며 촘촘히 새겼다. 그 아래 4곳에는 사각형의 연곽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모양의 연뢰(蓮蕾)를 9개씩 두었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로 두었고, 그 사이에는 구름위에 석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서 조금 위로 올라와 덩굴무늬 띠를 둘렀다.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종이다.
갑사 진해당(振海堂)
갑사 적묵당(寂默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갑사대웅전 (甲寺大雄殿)
갑사 대웅전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 다포식건뭉임
영규선사 대제준비로 한창 바쁘게 움직인다.
대웅전 현팡이 4개의 널판을 붙혀서 글씨를 썼습니다. 이렇게 큰 현판은 본 적이 없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_ 갑사대웅전소조삼세불 (甲寺塑造三世佛)
갑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높이 255㎝로 둥근 얼굴에 백호가 조각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통견으로 소조좌불이다.
우측에는 아미타불(높이 235㎝), 좌측에는 약사여래(높이 235㎝), 그리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등 4대 협시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_ 갑사삼성각 (甲寺三聖閣)
삼성각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토착한하면서 나타난 신앙인 칠성, 산신, 독성의 삼성을 함께 모신 곳입니다. 각각의 건물에 따로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장각
갑사 관음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_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 (甲寺石造藥師如來立像)
갑사 동쪽 계곡 약 100m 지점의 자연 동굴안에 있는데, 원래는 갑사 뒷산의 사자암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고 얼굴은 긴편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을 약간 노출시키고,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가슴 아래로는 반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쪽 어깨 부근에서는 한 가닥의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을 살펴보면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미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4호 _ 갑사팔상전 (甲寺八相殿)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고, 통일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의상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고치고 넓혀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 그리고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며,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호법신은 대개 우리나라 전통의 신들이다.
건물 규모는 작지만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 격식을 갖추고 있다.
갑사팔상전 (甲寺八相殿) 현판
갑사석조보살입상 (甲寺石造菩薩立像) 보호각
갑사석조보살입상 (甲寺石造菩薩立像) 보호각
갑사석조보살입상 (甲寺石造菩薩立像) 보호각
큰 개가 2마리가 짖어대서 먼 발취에서 보고 갑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 _ 갑사표충원 (甲寺表忠院)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고, 통일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의상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고치고 넓혀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충원은 영조 14년(1738)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물 안에는 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 _ 갑사표충원 (甲寺表忠院)
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
의승장 영규대사 기적비
고즈넉하고 가지런히 정리된 장독대
갑사 범종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_ 갑사사적비 (甲寺史蹟碑)
갑사의 창건과정과 역사를 적은 비로, 바윗돌 위에 사각의 비받침돌을 마련하여 비몸을 세운 후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몸에는 4면 모두 비문을 새겼는데 일부 손상된 부분은 읽을 수가 없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비석재(碑石材)속에 금이 들어 있어 그것을 파내기 위한 소행이었다고 한다.
조선 현종 원년(1659)에 세운 비로, 비문은 여주 목사 이지천이 짓고 공주목사 이기징이 글씨를 썼다.
갑사사적비 (甲寺史蹟碑) 전면
갑사 공우탑
갑사 공우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 _ 갑사대적전 (甲寺大寂殿)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보수하여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_ 갑사대적전 (甲寺大寂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8호_공주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보물 제257호 _ 공주 갑사 승탑 (公州 甲寺 僧塔)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나,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졌다. 특히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승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사천왕입상
사자.구름.용
보물 제256호 _ 공주 갑사 철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와 함께한 공주 갑사를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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