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북도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_옥천 육영수 생가

기리여원 2026. 6. 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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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_ 옥천 육영수 생가 (沃川 陸英修 生家), 대문 및 곳간채


면   적 : 일원(6,047㎡)
지정일 : 2002.04.26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난 장소이다.현재 건물은 없지만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송정승 및 민정승이 거주하여 삼정승의 집이라 불리던 가옥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1920년 매입하였다고 한다.6,047㎡의 대지 위에 1970년 초에 개축된 관리사·사당 등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울창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고 본채·사랑채·별당 등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연못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넓직한 사랑채 터가 있고 그 뒤에 안채 터가 있으며, 청기와 지붕의 사당과 별당 터가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관리인과 고용인들이 기거하던 부속건물이 있으며 사랑채 터 동쪽에는 연못이 있다.육영수 여사는 옥천지방의독농가(篤農家)육종관의 2녀로 출생하였으며, 이름있는 문벌이었고 우리나라 전통적인부덕(婦德)을 갖춘 현대여성이었다. 특히 불우한 사람을 위해서 봉사와 희생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여 8월 19일 국민장으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정승들이 살던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양식의 건축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곳이며,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곳으로 가치있는 자료이다.

옥천 육영수 생가 표지판

 

육영수여사의 생애

 

생    애 

* 1925.11.29. 충북 옥천 출생

    아버지 육종관, 어머니 이경령, 1남 3녀 중 세째

* 1950.12.12. 박정희와 대구에서 결혼

   송재천 소위의 소개로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소령)을 만남

* 1974.08.15. 서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흉탄으로 운명함.

 

학   력 

* 1938. 옥천 죽향초등학교 졸업

* 1942.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졸업

     학창시절 재봉과 수예, 요리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였다고 함

 

발자취

* 1945.11. 옥천여자중학교 교사(사사)

      학생들에게 수예, 도화(미술)등을 가르침.

* 1963.12. ~1974.08. 제5~8대 영부인

       서울 남산<어린회관> 건립,  『어깨동주 』 발간, <어린이 대공원> 건립 등 청소년

       육성에 많은 열정을 쏟았으며, 양지회 봉사활동 등을 통해 고통받고 소외된

       서민들을 위로함.

육영수생가 대문

 

창고

 

사랑채

 

정면 3칸의 사랑대청과 정면 2칸의 온돌방으로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온돌방의 후면으로 전화방과 암실, 창고 등의 부속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귀빈접대 등에 사용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방문 시 임시 집무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랑채 정측면

 

정면 3칸의 사랑대청

 

육영수여사 영정

 

중문채

 

동네사랑으로 20여명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규모의 방이었으며, 이 가옥에서 일하던 사람들 및 동네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기도 하였고 겨울철에는 새끼를 꼬기도 하던 온돌방이다.

연당사랑

 

연당사랑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 반으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누마루 목조건축물이다.

연못후면에 배치된 가옥으로 생가 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다.

위채

 

전형적인 'ㅁ'자형의 구조로 서쪽은 안채에서 통행할 수 있는 진입로이며, 동쪽에는 외부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교동가옥의 가장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간구성은 안채와 거의 유사하며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안대청이 있고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안방의 서쪽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의 상부에는 누다락이 구성되어 안방에서 사용하였으며, 함실부엌과 연속되는 날개채에는 행랑과 식모방이 있다.

정자

 

사당의 뒤쪽으로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사과나무, 밤나무, 배나무, 포도, 자두 등 각종 과일을 재배하였던 과수원 안쪽에 배치된 정자는 1칸 규모의 초가를 이은 형태이다. 육영수 여사가 어린시절 알밤을 줍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당

 

조산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전면에 1칸의 툇간을 두었다. 내부에는 마루가 깔려 있으며 언덕위에 조성되어 있고 자연 지형물을 이용하여 서쪽에서 진입하여 사당에 이르는 형태이다.

안채

 

'ㄷ'지형으로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령, 뒷방에는 육영수여사, 동쪽 날대채에는 아버지 육종관이 주로 거주히였다고 한다.

안채의 날개채

 

안채 뒷편의 육영수 여사의 방

 

이곳은 육영수 여사가 출가하기 전까지 사용하였던 방으로 책상 하나 놓고 한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다고 하며, 후면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뒤주

 

곡식을 담아두기 위한 대형 뒤주로서, 보통의 뒤주가 통나무나 널빤지를 짜서 궤짝의 형태로 만드는데 비해 이 뒤주는 너비 150cm, 높이 240cm로 바닥에서 들어 올려진 고정식으로 판벽과 판문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연자방아

 

아래채

 

'ㄱ'자형의 구조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되어 있으며 후면은 모두 쪽마루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안채평면유형을 따르고 있다. 정면 2칸의 안대청 서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구성되어 있으며, 안대청 동쪽애는 2칸의 온돌방이 있다.

아래대문채

 

2026.04.15, 옥천 육영수 생가

글 문화재청 및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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