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1901-3호_명성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명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2016.07.17)

기리여원 2019. 8. 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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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_ 1898년

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 _ 1898년



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1898년


고종비 명성왕후(1851~1895년) 국장 당시의 빈전과 혼전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각종 제구와 물품등의 채색도설에서 황제국으로서의 변모를 살펴볼 수 있다.



시해된 國母, 명성왕후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누구든 부정하지 않은 사실은 한나라의 왕비가 궁에 난입한 외국인에게 시해된 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명성황후는 생애 역시 풍파가 심했다.

1851년 경기 여주에서 민치록의 딸 태어나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와 살았다. 16세 때인 1866년 고종과 국혼 올렸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 가문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며느리로 삼았지만,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의 최대 라이벌이 됐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당시엔 신변의 위협을 받아 장호원으로 피신했다가 환궁하기도 했다.

  외교적으로 청나라와 러시아 등에 기댔으며 일본과는 적재적 관계였다. 미우라 고로 일본 공사는 1895년 '여우사냥'이란 암호를 명성황후 제거 계획을 세우고, 그해 10월8일 경복궁내 건청궁 옥호루 일본인 수십명을 잠입시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피살 직후 폐서인됐다가 같은 해 10월 복호됐다. 1897년 대한민국 수립 선포후 명성황후로 추존되고 홍릉에 안장됐다.


                                                                                2016.10. 08. 토요일 한경 이미아기자





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1898년




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 _1898년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승하한 고종비 명성왕후(1851~1895)의 국장(國葬) 거행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1897년(광무 1)10월28일혼전인 경운궁<덕수궁> 경효전(景孝殿)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국장도감에서 준비하고 거행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보물 제1901-3호 _ 명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 _1898년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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