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 제327호 _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扶餘 王興寺址 出土 舍利器)
수 량 : 3점
지정일 : 2019.06.25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충절로2316번길 34 (규암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시 대 : 백제시대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은 목탑지의 심초석 남쪽 중앙 끝단에 마련된 장방형 사리공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가장 바깥에 청동제의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 그리고 보다 작은 금제 사리병을 중첩하여 안치한 3중의 봉안 방식을 취하였다.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귀한 재질인 금, 은, 동을 순서대로 사용한 백제 사리장엄의 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선 청동제사리합은 바닥이 납작한 원통형 몸체의 위, 아래로 두 줄의 음각선을 둘렀고 사리함 뚜껑에도 두 줄씩 음각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 넣었다. 뚜껑 중앙에 솟아 있었던 연봉형의 손잡이는 부러진 채 발견되었는데, 현재 복원되어 있다. 청동 합 안에 넣었던 은제사리호는 직립된 긴 목 아래로 둥근 몸체와 낮은 굽을 지닌 호의 모습을 하였다. 목 부분에 접합한 흔적이 보이는 것은 금제 사리병을 안치하기 위해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서 나중에 접합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룩하게 솟은 뚜껑 중앙의 연봉형 손잡이가 있고 그 주위에 연잎을 유려하게 새겼다.
특히 몸체의 안쪽 바닥에는 별도의 받침대가 있는데, 은제사리호 내부에 안치되는 금제사리병이 움직이지 않도록 계획된 것이다. 가장 안쪽의 굽 달린 금제 사리병은 아래쪽으로 갈수록 볼록해지는 호리병 형태로서 가장자리에는 음각선이 한 줄 새겨져 있다. 뚜껑 가운데로 보주형의 손잡이가 솟아있으며 역시 그 주위에 6엽의 연잎을 새겼다.
청동제사리합에는 6행 29자의 명문이 확인된다. “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王昌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神化爲三” 즉, “정유년(丁酉年, 577년) 2월 15일에 백제왕 창(百濟王昌)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찰(刹)을 세우는데, 2매였던 사리가 장시(葬時)에 신(神)의 조화로 3매가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문은 사찰(刹)의 건립시기, 사리기의 제작시기 등을 알려주고, 더불어 사찰의 건립 배경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는 현재까지 확인된 국내 사리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리장엄구로 가치가 높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표지판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扶餘 王興寺址 出土 舍利器)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하부에 놓인 심초석(心礎石)의 사리공 안에서 출토되었습니다.청동함 표면에 정유년(577) 백제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서 사찰을 세웠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扶餘 王興寺址 出土 舍利器)
청동제사리합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금제사리병
2016.12.04, 국립부여박물관
글 문화재청
1500년 전 백제 청동사리합, 아들 잃은 위덕왕 슬픔
부여 왕흥사 목탑 터 발굴
국내 最古 사리장엄구 출토
사리합 표면의 명문 CG로 복원
왕흥사 창건 연대 바로잡아
삼국사기 기록보다 23년 앞서
7000원짜리 렘치로 연 사리합
작은 은-금 사리병 차례로 담겨
1일 충남 부여군 왕흥사 터. 백마강 너머로 백제 멸망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낙화암이 멀리 보였다. 백제 위덕왕은 자신이 지은 화려한 왕실 사찰을 드나들며 보았을 낙화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을까. 도도히 흐르는 저 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폂쳐진 셈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봉안하는 기구)가 이곳에서 출토된 지 10주년을 맞는 해다. 당시 왕흥사 목탑 터에서 사리기를 건져 올린 김용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과 이규훈 문화재청 학예연구원, 안보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最古 사리장엄구, 모습을 드러내다.
"뭔가 대칼(대나무) 끝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2007년 10월 10일 왕흥사 목탑 터 발굴 현장.
장마가 끝나고 심초석(心礎石. 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귀퉁이를 조사하던 강환구 연구원이 이규훈을 다급하게 불렀다. 조심스레 개흙을 제거하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탑에 사릭를 종종 묻어놓지만 심초석에 구멍을 내고 뚜껑돌을 놓은 건 처음이었다. 장기간 작업으로 지쳐 있던 발굴팀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공간이 좁아 손끝이 야무진 허진아 연구원이 들어가 서서히 돌을 들어올렸다. 모두 숨죽인 가운데 뚜껑돌을 올리자마자 탄식이 흘러나왔다. 기대와 달리 내부는 진흙과 물만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흙탕물 속을 대칼로 찌러 보니 걸리는 게 다시 느껴졌다. 30분간 물을 빼내고 진흙을 제거하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원통형 그릇이 나왓다. 1500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백제시대 청동 사리합이었다.
사리합 표면을 닦아내자 "정유(丁酉)년'으로 시작되는 한자 명문이 드러났다. 발굴팀의 심장은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1차 시료가 없는 삼국시대의 명문은 역사 해석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보존과학실 직원들을 긴급 소집하고 명문 해석에 돌입했다. 이때 안보연은 촬영한 명문 이미지를 바탕으로 글씨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복원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먼저 이 명문을 보는 호사를 누려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잃은 왕의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사리 두개를 묻었는데 신묘한 조화로 세개가 되었다.'
청동사리합은 명문은 지금껏 알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우선 왕흥사 창건 연대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600년(법왕 2년)보다 23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 적힌 연대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용민은 "고고학자로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횡재를 누린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명문이 얘기하는 왕흥사의 조성 경위도 흥미롭다. 위덕왕은 신라왕의 관산성 전투에서 아버지 성앙을 여윈 인물이다. 부친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한때 승려로 출가하려고 했던 그가 이젠 아들마저 잃은 것이다.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사찰을 세운 아버지의 슬픔이 사리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백제왕의 가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597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아좌태자 이외에 위덕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왕자가 별도로 존재했음이 사리기를 통해 증명됐다.
●홈쇼핑 만능렌치의 비밀 청동사리함을 발견한 것 못지않게 이를 여는 것도 만만치 않은 난관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로 보내 사리함 뚜껑을 열려고 1주일 동안 씨름했지만 청동 녹이 달라붙어 번번이 실패했다.발굴팀은 내부를 찍은 X레이 사진만 언론에 공개하려 했지만,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열어 볼 것을 지시했다. 발굴단원들이 골머리를 앓던 상황이었는데 답은 전혀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홈쇼핑 광고를 본 전산 담당 직원이 이른바 '만능레치'로 열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철물점에서 구입한 7000원짜리 렌치로 아무 흠없이 사리합 뚜껑을 열 수 있었다. 청동사리합 안에선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조그마한 금 사리병이 들어있는 은 사리병이 나왔다. 금 사리병 내부는 명문에 적힌 사리는 찾아 볼 수 없었고 물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발굴팀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분 분석을 했지만 순수한 물로 조사됐다. 이규훈은 "사리공으로 물이 샜다면 청동사리합이나 은 사리병에도 물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사리기에 적힌 신묘함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고 말했다.
2017년 2월 8일 수요일 동아일보 부여= 김상운 기자
* 문화재청은 '2007년 충남 부여의 백제 왕흥사터에서 출토된 사리기가 보물 제1767호에서 국보 제327호로 승격됐다" 고 6월 2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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