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홍성 기봉사(최영장군 사당), 최영장군 묘

기리여원 2022. 6. 20. 14:48

기봉사(최영장군 사당)

 

소재지 : 홍성군 홍복면 대인리 산39-7

 

고려시대 무신인 최영장군의 사당이다. 최영장군은 1316년 고려 충숙왕 때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나 16세 때 아버지가 남기신 유언을 교훈 삼아 청렴결백한 관리였다. 고려의 건국 이상인 옛 고구려땅 만주 벌판을 되찾는데 노력하였으며 홍건적을 격파하고 1360년 남쪽 지방을 괴롭히는 왜구를 섬멸하고 1375년 홍산대첩(鴻山大捷) 등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고려 우왕은 장군에게 시중(侍中 : 지금의 국무총리) 벼슬을 주고 전토와 노비를 상으로 주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73세(1388) 고령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을 맡았다.

 

1388년 3월 명나라가 우리의 북쪽 지방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기의 땅이라고 하자, 장군은 팔도도통사가 되어 옛고구려 땅인 요동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의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성계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고봉(고양)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개경(開京)에서 참형(斬刑)되었다

 

 

기봉사(奇峰祠) 전경

 

 

기봉사(奇峰祠) 오르는 돌계단

 

 

 

기봉사(奇峰祠) 

 

 

기봉사(奇峰祠) 

 

 

기봉사(奇峰祠) 우측면

 

 

기봉사(奇峰祠) 좌측면

 

 

가공사에 모신 최영장군의 영정과 위패

 

 

 

▼ 제주시 추자면에 위치한 최영장군 사당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1호 _ 최영장군사당 (崔瑩將軍祠堂)

 

소재지 : 제주 제주시 추자면 대서4길 3-13 (대서리)

 

고려시대 명장이였던 최영(1316∼1388) 장군의 사당이다.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는 제주목사가 죽음을 당하는 등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따라서 조정에서 공민왕 23년(1874)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원정을 가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추자도로 대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최영 장군은 주민들에게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뒤부터 주민들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당을 지어 해마다 음력 7월 15일과 음력 12월 말일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지내고 있다.

 

최영장군사당

 

 

▼고양시에 위치한 최영장군의 묘입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23호 _ 최영장군 묘 (崔瑩將軍 墓)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70-2번지


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최영(崔瑩, 1316∼1388) 장군의 묘이다.
홍건적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압록강까지 진군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88년(우왕 14)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묘역은 부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와의 합장묘로 하나의 봉분으로 조성되었다.
묘제(墓制)는 원형이 변형되었지만, 석물은 옛 것과 새 것이 섞여 있다. 봉분은 고려 말기의 전형적인 직사각 형태이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래 부분에 2단으로 둘레석을 조성하였다. 봉분의 정면 왼쪽에는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를 세웠고,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무민공 충혼비(武愍公 忠魂碑)를 세웠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문석인 등을 조성하였는데, 모두 1970년대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이 묘역은 고려시대의 묘제(墓制)가 일부 남아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2022.06.14. 홍성군 홍복면 대인리, 홍성 기공사

문화재청, 전시안내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