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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일편단충> 필적과 김규복의 <발문>

기리여원 2022. 8. 8. 15:13

명성황후의 <일편단충> 필적과 김규복의 <발문> _ 명성황후, 김규복, 조선 1885년, 종이에 먹,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명성황후가 직접 쓴 <일편단충> 네 글자와 이 글씨를 하사받은 내시부사 김규복이 쓴 <발문>이 함께 남아 있는 유물이다.

'일편단충"은 "마음에서 우러난 참된 충정심"이라는 뜻이다. 명성황후는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충성을 다해 왕실을 보필한 세 명의 환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글씨를 하사하였다. 김규복의 <발문>에는 명성황후가 <일편단충> 네 글자를 환관들에게 내려준 배경과 그 의미가 자세히 적혀있어, 이 글씨가 명성황후가 직접 쓴 글씨임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19세기 말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조선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1882년의 임오군란(壬午軍亂)과 1884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은 조선 말기의 정치적 혼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김규복은 <발문>에 이 두 차례의 난리때에 여러 내시들이 고종과 왕실 가족들을 목숨을 걸고 지켜낸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혼란이 정리되고 창덕궁으로 돌아온 다음 해인 1885년 12월 21일, 명성황후가 왕실의 위기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한 환관들의 충심을 기억해 <일편단충> 네 글자를 썼다고 밝힌다. 명성황후는 총 3점을 써서, 내시 김규복과 김규석, 황윤명에게 하나씩 선물로 내려주었다. 김규석과 황윤명에게 하사한 나머지 두 점은 현재 여주박물관과 개인이 각각 소장하고 있다.

정갈한 글씨의 김규복의 <발문>은 조정에서 일했던 사자관(寫字官)이나 서리(書吏)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발문>의 내용은 그가 직접 기록한 것으로, 왕가의 측근으로 최고 권력을 누렸던 고위층 환관의 시각으로 쓰인 편향된 기록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라는 두 차례의 중요한 역사의 순간에 왕실이 받은 위협과 피난 경로 등 다른 역사 문헌에는 남아있지 않은 구체적인 정황들이 생생하게 기록된 귀중한 자료이다.

 

명성황후의 <일편단충> 필적 _ 명성황후, 조선 1885년, 종이에 먹,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김규복의 <발문> _ 김규복, 조선 1885년, 종이에 먹,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김규복의 <발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 창립 136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_명품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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