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국가등록문화유산,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기리여원 2026. 3. 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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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682호 _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天主敎 珍山 聖地聖堂)

 

수량/면적 : 1동/ 현황측량면적 188㎡

지정일 : 2017.05.29

소재지 : 충청남도 금산군 실학로 207 (진산면, 천주교대전교주진산성지성당)

시   대 : 일제시대

 

- 개요

진산지역은 조선조 후기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 받은 윤지충이 가족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최초의 박해였던 신해박해(1791)의 진원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후 1887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어 천주교인들이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자 공소형태로 종교집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민가에서부터 시작된 교회건물이 몇 차례 지어 졌고 1927년에 건립된 성당건물이 현재까지 미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해박해 때 순교한 두 신도(윤지충, 권상연)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시복됨(2014 8 16)으로써 천주교의 성지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동서로 긴 축을 가진 3랑식 바실리카 형식으로 맞배지붕, 중앙종탑의 중규모 성당건축의 전형적 모습을 하고 있다. 목조구조는 내외부에 모두 노출되어 있는데 내부에서는 중앙통로(네이브)의 상부 지붕을 받쳐주는 기둥들이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더욱 차분한 느낌의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중앙통로 상부에 고창(高窓)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양쪽의 측랑보다 높은 지붕을 설치하여 기본적인 바실리카식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벽기둥 사이의 하부는 징두리로 되어있고, 상부는 모두 유리창으로 마련하여 밝은 분위기의 성당내부를 연출하고 있다. 주출입구 상부에는 중2층을 두어 성가대석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2004년 수리 때 철거하였다. 외벽은 원래 비늘판 벽이었으나 후에 몰탈을 덧 씌웠고 종탑 또한 목조였으나 1983년 철거하고 시멘트벽돌 조로 새로 만들고 현관도 새롭게 덧 붙였다. 원래 남녀 구분된 현관이 양쪽에 있었는데 가운데로 합쳤고 양옆의 공간은 고해실과 준비실로 사용하고 있다.

진산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표지판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진산은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제사 문제와 관련하여 정조 15년(1791)에 진산 사건(신해박해)이 일어난 곳이다. 그 이후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지역 천주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종교적 역사성이 깃든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 교회의 ‘최초 순교자들(윤지충과 권상연)’이 나서 성장하고 묻힌 터전이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한 124위 순교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현관 쪽의 중이층과 목조 종탑은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고, 종탑은 2004년 현재의 시멘트 벽돌조의 종탑으로 재보수 되었다.

주출입구와 좌 · 우측의 부출입구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정측면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좌측면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은 직사각형 건물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제단부 (벽제대, 난간, 마루), 지붕 구조, 내외부 기둥은 원형이다. 1960년대 초 외벽체 하부에 시멘트 벽돌을 사용하여 벽체를 보강한 공법은 그 당시 독특한 방식이다.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후측면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후면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제단

 

이 성당은 1927년에 프랑스 선교사 박 파르트네 신부가 지은 소규모 목조 건물로 절충식 한식 목구조(2고주 5량가)이며 2열의 내부 고주에 의해 가운데의 본당과 좌우 측랑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삼량식 공간이다.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출입구방향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내부 창호

 

2026.03.19, 금산순 진산면,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문화재청, 안내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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