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기념물 제105호 _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沃川 滄州書院 廟庭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96.01.05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3길 24 (이원리)
옥천군 이원면 현(縣) 마을 옛 창주서원 (創洲書院) 자리에 서 있는 이 묘정비(廟庭碑)는 1682년 숙종(肅宗)8년 창주서원 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세운 비로서 우암(右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글을 짓고 곡운(谷雲) 김수증 (金壽增)이 글을 썼다.
이 비는 장방형(長方形)의 기초석(基礎石) 위에 비신(碑身)을 세웠으며 비신 위에는 기와지붕 모양의 비 갓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올려 놓아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표지판
이 표지판에 우암(右菴) 송시열(宋時烈)을 우암( 尤庵) 송시열(宋時烈)로 수정바랍니다.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전경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각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1697년(숙종 23) 건립하였고 비신의 높이 169㎝, 너비 89㎝, 두께 44.5㎝이다.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1682년 숙종(肅宗) 8년 창주서원 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세운 비로서 우암(右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글을 짓고 곡운(谷雲) 김수증 (金壽增)이 글을 썼다.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창주서원은 이곳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92)과 유학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몇 차례 서원 건물을 옮겨 다니다가 1689년 이산(伊山) 서쪽 기슭의 경승지에 건립하였다. 그 뒤 청나라 황제의 사액(賜額)을 받게 되자 그간의 내력을 적어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옥천 창주서원 묘정비
2026.04.22,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 창주서원 묘정비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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