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북도

충청북도 기념물 제44호_옥천 김문기 유허비

기리여원 2026. 4. 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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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기념물 제44호 _옥천 김문기 유허비 (沃川 金文起 遺墟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12.31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3길 44-29 (백지리)

유허란 남긴터, 옛 터라는 뜻으로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 곳 또는 순절한 곳을 이른다.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문기 선생의 옛 자취를 기록해 두고 있다.

백촌 김문기(1399∼1456) 선생은 세종 8년(1426) 문과에 급제하였고, 단종 원년(1453) 함길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세조 2년(1456) 단종 복위의 거사에 가담하다 붙잡혀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사육신과 함께 순절하였다. 영조 7년(1730) 그의 9대손 정구의 상소로 관직을 돌려 받았으며, ‘충의’라는 시호를 받게 되었다.

현재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는 비는 순조 4년(1804)에 세운 것으로, 헌종 12년(1846)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옥천 김문기 유허비 표지판

 

 白村 金文起 先生  遺墟碑 案內 표지석

 

옥천 김문기 유허비 전경

 

옥천 김문기 유허비각

 

옥천 김문기 유허비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1399∼1456)

 

김문기(金文起, 1399∼1456) 의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초명은 효기(孝起)이며, 호는 백촌(白村)이다. 어릴 때부터 효행이 뛰어나 향리인 백지리를 ‘효자동’이라고 불렀다.

 

그는 1426년(세종 8) 문과에 급제한 이후, 병조참의·함길도관찰사·공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1456년(세조 2) 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복위를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였으며, 1778년(정조 2)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을 죄를 풀어버림)되었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 노량진 사육신묘역에 허총(許塚: 가묘)을 봉안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옥천 김문기 유허비

 

유허비에는 '有明朝鮮國吏曺判書 贈議政府左贊成 諡忠毅金公諱文起遺墟碑(유명조선국이조판서 증의정부좌찬성 시충의김공휘문기유허비)'라고 새겨겨 있다.

옥천 김문기 유허비

 

 유허비는 순조 4년(1804)에 세운 것으로, 비신(碑身)의 높이 120㎝·두께 25㎝, 전체 높이 200㎝이다.

옥천 김문기 유허비 후면

 

 

▼ 김문기 유허비 주차장 우측에 세워진 충의공 김문기선생 사육신현창기념비입니다.

忠毅公 金文起先生 死六臣顯彰紀念碑(충의공 김문기선생 사육신현창기념비)

 

"1977년 국사편찬위원에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선생을 사육신으로 판정한 결의문" 동판

 

2026.04.22, 옥천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김문기 유허비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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