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남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_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기리여원 2018. 9. 19. 10:43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_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金正喜先生古宅<안채.사랑채>)                                


지정일 : 1976.01.08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용궁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옛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2동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_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金正喜先生古宅<안채.사랑채>)                                


추사고택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왕의 부마이신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며, 주변에는 추사선생묘, 월성위, 화순옹주 묘와 정려문, 백송, 화암사 등 추사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있다.


   추사고택은 문간채와 사랑채 그리고 안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넌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칸으로 그리 흔치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사랑채는 바깥 솟을 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마루공간이 큰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잏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刻字)한 것이다













 김정희선생고택 사랑채                                        


사랑채는 바깥 솟을 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마루공간이 큰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김정희선생고택 사랑채                                        






석년(石年)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刻字)한 것이다






국보 제180호 _ 김정희필 세한도 (金正喜筆 歲寒圖) ,복제품                               


한도(歲寒圖)


세한도는 1844년 완당나이 59세 때, 제주동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다


팜플렛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하여 극도의 절제와 생략을 통해 문인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화로 평가되고 있다

글 문화재청


*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208.12~2019.02월에 전시할 예정입니다.



유복량수(有福量壽)


추사가 회갑 때 쓴 것으로 "많은 복과 한없는 수명'이라는 뜻이다.


신안구가(新安舊家) _ 김정희, 19세기, 종이에 먹, 39.3×164.2cm, 간송미술관


'신안의 엣집"이란 뜻으로 주자성리학의 시조인 주희(朱熹)가 중국 송나라 신안인이므로 '주자성리학자의 전통을 가진 집'이라는 뜻이다.



불이선란(不二禪蘭)


추사 선생이 특히 난초를 잘 쳤는데, 난초 치는 법 역시 예서(隸書)쓰는 법과 비슷해서 반드시 문자향(文子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만 잘 할 수 있으며, 화법을 따라 배워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난초 그림은 초서(草書)와 예서(隸書)의 기자(奇字)의 법으로 그린 것으로, 파격을 넘어 불이선의 경지에 다다른 불계공졸(不計工拙0의 명화이다.





지란병분(芝蘭竝芬)  _ 김정희, 19세기, 간송미술관


지초(芝草)와 난초가 향기를 함께한다는 뜻으로 조희룡, 이하응, 권돈인의 제발이 적혀 있다

















죽로지실(竹爐之室)


「차를 끓이는 죽로(겉은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가 있는 방 」이란 뜻으로, 추사가 친구인 초의(草衣)에게 써 준 다실(茶室)이름이다. 예서(隸書).

전서의 형을 살리어 그림을 피하는 듯하여 지나치게 교(巧)를 부린 작품이다. 추사의 글씨를 평하여 일반적으로 졸(拙)한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실은 추사의 글씨는 교(巧)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그의 교(巧)는 이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교(精巧)에 속하는 것이요. 불균형적(不均衡的)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교(巧)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예외가 될 것이다.







▼ 여기서부터는 김정희선생 고택의 안채입니다.


 김정희선생고택 안채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넌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칸으로 그리 흔치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무량수(無量壽)


「한 없는 수명 」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에 입각하여 쓴 글이다.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삼세(三世)고금을 통하여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으므로, 그 수명이 실로 무량하여 한이 없기 때문에 무량수라 하였다. 왼쪽의 승련노인(勝蓮老人)은 추사선생의 호(號)이다.






만수무강(萬壽無疆)


건강과 장수를 빌 때 쓰는 말로써, 「한없이 목숨이 긺 」을 나타내는 뜻의 예서(隸書)이다.

이 글씨는 누구에게, 언제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도 유배생활과 관직을 떠나 71세 때 경기도 과천 봉은사(奉恩寺)에 기거하고 계실 때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이란 글씨를 행농(杏農) 유기환(兪麒煥)에게 선물할 즈음 다른 친구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된다.
























추사 김정희 영당












추사영실(秋史影室) 편액


이 편액은 김청희의 평생 벗인 권돈인의 글씨입니다.


추사 김정희 영정






추사 김정희선고택 안채









추사 김정희선생고택 사랑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_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金正喜先生古宅<안채.사랑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_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金正喜先生古宅<안채.사랑채>)                                


글 문화재청, 팜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