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_ 의기사 (義妓祠)
지정일 : 1983.07.20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경남 진주시 본성동 500-8번지
의기사는 조선조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의기 논개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인조 7년(1629) 진주의 선비들은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경종 2년(1722)에는 그 위쪽에 「의암사적비」를 세웠다. 영조 16년(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왕의 윤허를 받아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이후 세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있었다.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렬회에서 시민의 성금으로 재건하였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_ 의기사 (義妓祠)
의기사는 조선 선조 26년(1953)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순국한 바위에 새긴 의암이라는 글자는 인조 7년(1629)에 진주의 선지 정대륭(鄭大隆, 1599~1661)이 새겼고, 효종 2년(1651) 양곡 오두인(吳斗寅)은 의암기(義巖記)를 지어 촉석루에 현판하였으며, 경종 2년(1722)에는 명암 정식(鄭式, 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서 「의암사적비」를 세웠습니다.
영조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 1688~1742)가 의가사를 창건하고 '의기논개지위(義妓論介之位)'라는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의암서적비」에는 비각을 세워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_ 의기사 (義妓祠)
논개의 영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_ 의기사 (義妓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_ 의기사 (義妓祠)
글 문화재청,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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