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76호_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기리여원 2015. 11. 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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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6호 _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수   량 : 합 9책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길 48 (염치읍, 현충사)

시   대 : 조선 선조 25∼31년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이순신(1545∼1598)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이다.

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벼슬을 시작했다. 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詩)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사천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일기의 구성을 보면 제1권은『임진일기』로 선조 25년(1592) 5월 1일부터 선조 26년(1593) 3월까지 27매, 제2권은『계사일기』로 선조 26년(1593)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30매, 제3권은『갑오일기』로 선조 27년(1594)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52매, 제4권은『병신일기』로 선조 29년(1596)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41매, 제5권은『정유일기』로 선조 30년(1597)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27매, 제6권은『정유일기속』으로 선조 30년(1597) 8월 4일부터 선조 31년(1598) 1월 4일까지 20매이나 약간의 중복된 부분이 있다. 제7권은『무술일기』로 선조 31년(1592)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8매로 구성되어 있다.

7년의 난 동안 왜적과 싸우면서 틈틈이 계속하여 쓴 것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하여 390여년을 간직해 온 것이다. 이것은『충무공전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의 초본으로, 내용중에는 수군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군사제도에 대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표지판 _ 조선, 1592~1598, 국가유산청 현충사관리소(이순신 종가 기탁품)


난중일기 친필본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친필본이다. 일기가 작성된 연도에 따라 '임진일기(壬辰日記)', '정유일기(丁酉日記)'와 같이 표지에 이름을 붙였는데.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 』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수록하면서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임진일기(壬辰日記)

 

1권은임진일기로 선조 25(1592) 5월 1일부터 선조 26(1593) 3월까지 27

계사일기(癸巳日記)

2권은계사일기로 선조 26(1593)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30

갑오일기(甲午日記)

 

3권은갑오일기로 선조 27(1594)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52

병신일기(丙申日記)

4권은병신일기로 선조 29(1596)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41

정유일기(丁酉日記)

 

제5권은『정유일기』로 선조 30년(1597)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27매

(속)정유일기(續丁酉日記)

 

제6권은『정유일기속』으로 선조 30년(1597) 8월 4일부터 선조 31년(1598) 1월 4일까지 20매

무술일기(戊戌日記)

 

제7권은『무술일기』로 선조 31년(1592)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8매

 

 

▼서간첩입니다.

국보 제76호 _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 <서간첩(書簡帖)> 

 

현덕승에게 한산도로 진을 옮긴 이유를 설명한 편지

 

이순신이 한산도로 진을 옮긴 다음 날, 1593년(선조 26) 7월 16일 현덕승(1564~1627)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순신은 이 편지에서 호남(湖男)은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므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치고 바닷길을 끊고 일본 수군을 저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외에도 편지에 일상의 안부와 선물에 대한 감사를 전하면서도 전란을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서간첩은 이순신의 외기쪽 친척으로 추정되는 현건과 현덕승, 조카에게 편지 1통을 함께 엮은 것이다. 이순신의 10세손인 이규대가 서간첩을 만든 경위를 기록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서간첩(書簡帖)> 

 

국보 제76호 _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임진장초(壬辰狀抄)>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전투 경과와 여러 군사 업무에 대해 보고한 글을 모은 책

 

1592년(선조 25) 4월 15일부터 1594년(선조 27) 1월 17일까지 이순신이 약 2년간 올린 보고서를 후대에 다른 사람이 옮겨 적어 책으로 묶었다. 선조와 세자(훗날 광해군)에게 올린 공식 문서를 후대에 필사해 묶은 책이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1592년에는 주로 초기 출전의 승전 보고가, 강화 협상이 시작된 1593년 이후에는 군사, 행정 보고가 중심을 이룬다. 전투 후 올린 장게에서 전공자, 전사자, 부상자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1· 2 · 3등으로 나누어 상을 청하였고, 피란민들의 생계와 군량 확보를 위해 둔전 경영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였다. 그 외에도 전투 상황, 군사 운영, 수군 진영의 현황, 인사와 상벌, 군량 조달, 무기 개발, 피란민 대책 등 국가적 사안에 대한 내용과 이에 대한 이순신의 소신이 잘 정리되어 있다

<임진장초(壬辰狀抄)> 

 

* 2025.11.29, 국립중앙박물관_우라들의 이순신 답사후 원본으로 Upgrade함.

 

2020.11.01.아산 현충사,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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