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제주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_존자암지

기리여원 2021. 12. 3. 15:33

존자암지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7호 _ 존자암지세존사리탑

2.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 _ 존자암지

3. 제주 서귀포시 향토유형유산 제2호 _ 존자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 _ 존자암지 (尊者庵址)

 

면   적 : 20,800㎡

지정일 : 1995.07.13

소재지 :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번지

 

『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등의 문헌에 나한을 모셨던 절로 기록되어 있는 절터이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 인간의 소원을 빨리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라 하여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절에는 대부분 영산전을 두어 석가의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16나한, 500나한 등을 봉안하고 있으며 나한전이나 응진전을 따로 둔 절도 있다.

 

1990년대의 발굴조사에서 건물지, 부도, 배수시설과 기와조각, 분청사기조각, 백자파편들이 발견되었으며, 1998년부터는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절을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건물지 북쪽에 있는 부도(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7호)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존자암지 표지판

 

 

한라산 존자암지 입구

 

한라산 영실주차장에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 곳에서 존자암지까지는 1.0km이며, . 20~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존자암자로 가는 길은 제주불교순례성지길입니다.

 

 

존자암자로 가는 주변에 비자나무가 많습니다.

 

 

힐링이 따로 없습니다. 이 길을 걷는 것만이 힐링입니다.

 

 

 

 

 

 

존자암 일주문

 

 

존자암지

 

 

존자암 종무소

 

 

존자암 요사체

 

 

존자암 종무소

 

 

범종각

 

 

존자암 대웅보전

 

존자암지 (尊者庵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 존자암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존자암은 한라산 서쪽 기슭에 있는데, 그곳 동굴에 마치 스님이 도를 닦는 모습과 흡사한 돌이 있어 세상에 수행동(修行洞: 수행하는 동굴)이라 전해졌다.”고 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효종 초에 간행된 『탐라지(耽羅志)』에는, “존자암의 애초의 위치는 영실이고 지금은 서쪽 기슭에서 밖으로 10리쯤 옮겼는데, 곧 대정지경”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존자암은 효종 이전에 그 위치가 영실에서 대정지경으로 옮겨졌으며, 따라서 지금의 존자암지는 17세기 중반 이전의 존자암의 터전인 셈이다.

 

그러나 존자암이 어느 때 누구에 의해 건립된 암자인지, 상세한 내막을 전해 주는 문헌기록은 없다. 다만 김정(金淨)의 「존자암기(尊者庵記)」에는, “존자암은 고·양·부(高良夫) 삼성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비로소 세워졌는데, 3읍이 정립된 후에까지 오래도록 전하여졌다.”고 하였다.

 

존자암 대웅보전

 

존자암의 규모에 대해서는 『남사록(南槎錄)』에, “존자암은 아홉 칸인데, 지붕과 벽은 기와와 흙 대신에 판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까닭을 당시 스님과 오고간 대화 내용을 인용하여, “산중의 토맥은 점액이 없고 또 모래와 돌이 많아서 벽을 바르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기와는 반드시 육지에서 사와야 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1593년(선조 26)에 전라남도 강진에 사는 스님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방호(防護)를 서기 위해 제주에 들어왔다가 임무를 마치자 곧 재물을 내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광해군 초기에 제주 판관을 지낸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에는 존자암을 정사(靜舍)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는 이곳에서 국성재(國聖齋)를 올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존자암 국성재(國聖齋)

 

 

존자암지세존사리탑 전경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7호 _ 존자암지세존사리탑 (尊者庵址世尊舍利塔)

 

존자암지세존사리탑은 존자암지의 경내에 있다. 존자암의 창건 연대를 살펴보면 “존자암은 高·梁·夫 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 비로소 세워졌다”고 충암 김 정은 존자암중수기(--夫尊者之爲庵 肇造於三姓初起之時 而久傳於三邑鼎峙之後--)에서 밝히고 있다. 세존사리탑에 관한 자료는 1650년(효종2년)에 안핵어사로 왔던 李慶億의 詩에 “ 千年孤塔在 천년을 지나온 탑 외로이 서 있는데”라고 사리탑을 敬畏하였다.

 

이 세존사리탑은 제주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먼저 지대를 단단히 다진 후 8각형 기단을 구축하여 그 위에 괴임돌을 놓고 탑신을 얹어 옥개석을 동일석으로 만들었다. 탑신석은 석종형(石鐘形)에 속하나 장구형(長球形)으로 상·하를 평평하게 다듬었으며 중앙부로부터 상·하단에 이르면서 유여한 곡선미를 보이고 있다. 옥개석 형태는 하면은 평평하나 낙수면이 제주 초가지붕 형태로 부드러운 곡선을 보이고 있으며 그 위에 조성된 보주 또한 세련된 조각미를 연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옥개석과 보주를 같은 돌로 다듬은 예가 없을 만큼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팔각으로 이뤄진 하대석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사리탑의 기본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괴임돌에 사리공을 마련하고 장구형 탑신석 위에 옥개석을 덮어 정상에 보주를 장엄한 양식 등 각부의 다듬은 모양과 건조수법으로 보아 건조연대는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된다. 2003년 봄에 정비되었다.

 

존자암지세존사리탑에서 바라본 대웅보전과 국성재

 

 

존자암지

 

 

존자암지

 

 

존자암지를 둘러보고 영실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2021.11.20. 서귀포시 하원동, 존자암지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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