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장수향교

기리여원 2021. 12. 28. 10:30

장수향교에 있는 지정문화재

 

1. 보물 제272호 _ 장수향교 대성전 

2.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_정충복비

 

장수향교(長水鄕校) 배향공간 전경

 

장수향교(長水鄕校)

 

소재지 : 전북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장수향교는 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장수면 선창리에 창건하였다.

1686년(숙종 12)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877년(고종 14)에 현감 홍우정(洪佑鼎)이 중수하였으며, 1935년에 중수하고 1970년·1973년·1975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대성전은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적 건물의 하나로 보존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판본 90종 237책, 사본 32종 57책의 총 122종 294책이 있으며, 이 중 ≪청금록 靑衿錄≫·≪장수현도유안 長水縣都儒案≫·≪유안 儒案≫·≪수정향안 修正鄕案≫·≪향교조례 鄕校條例≫·≪선안 仙案≫·≪향헌 鄕憲≫ 등의 필사본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글 대한민국구석구석

 

장수향교 홍살문

 

 

장수향교600주년기념비

 

 

장수향교 충효당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_ 정충복비 (丁忠僕碑)

 

장수읍의 향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시대 중기 사람인 정경손의 의로운 뜻을 기리고 있다.

 

정경손의 호는 충복으로, 임진왜란 당시 향교내의 문묘(文廟)를 지키고 있었는데, 왜적의 한 부대가 이곳 장수지역에 침입하여 문묘에까지 이르자, 문을 굳게 닫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하기를,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하였다. 이러한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복한 왜적들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이라 쓴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로인해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지역의 향교들에 비해 이곳만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의로운 기개를 거룩히 여겨 이 자리에 비를 세워 두었다,

 

비각안에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헌종 12년(1846)에 세웠다.

 

정충복비 (丁忠僕碑) 앞면

 

비석 앞면에는 호성충복정경손수명비(護聖忠僕丁敬孫竪名碑)라 써 있고, 후면에는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외삼문(外三門)인 부강문(扶綱門)

 

 

장수향교 명륜당(明倫堂)

 

대성전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유생들을 교육했던 강학공간이다. 앞면 4, 옆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의 구성에서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 양 측면에는 방이 1×1칸의 크기로 이루어져 있다. 전면과 후면에는 툇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구조는 낮은 기단위에자연석의 화강암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붕을 세웠다.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였으며 내부는 3량집이다. 주두위의 공포는 익공양식이다.

 

지붕은 2중 겹처마 위에 팔작지붕의 한식기와 잇기를 하였다. 그리고 서측면에는 주초 대신 짧은 누하주(樓下柱)를 세우고 그위에 귀틀이 짜여져 있어 본래 중층 건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수향교 명륜당 우측면

 

 

장수향교 명륜당 좌측면

 

 

장수향교 경성재

 

 

장수향교 진덕재

 

 

장수향교 사마재

 

 

장수향교 재향공간 전경

 

 

장수향교 내삼문

 

 

보물 제272호 _ 장수향교 대성전 (長水鄕校 大成殿)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숙종 12년(1686)때의 일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건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고 앞면 가운데에는 여닫이문을 달았다. 오른쪽과 왼쪽 칸에도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달았는데 그 옆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장수 향교는 임진왜란 때에도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서적은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특히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장수향교 대성전 현판

 

 

장수향교 대성전

 

장수향교 대성전은 공자와 4(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을 비롯하여 공문 10(孔門十哲 : 공자의 문인 중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제자)과 송조 6(宋朝六賢 : 송나라의 유명한 6명의 유학자),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

 

대성전의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2021.11.07, 장수군 장수읍, 장수향교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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