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 사적 제226호_강화 덕진진

기리여원 2022. 2. 10. 10:10

사적 제226호 _ 강화 덕진진 (江華 德津鎭)

 

면   적 : 15,171㎡

지정일 : 1971.12.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373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강화 덕진진 표지판

 

 

덕진진(德津鎭) 공조루(拱潮樓)

 

사적 제226호 _ 덕진진(德津鎭)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

 

덕진진은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서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 · 외성 · 돈대 · 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 「수영 」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곳이다.

 

덕진진(德津鎭) 공조루(拱潮樓)

 

덕진진(德津鎭)은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며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이다

 

덕진진(德津鎭) 공조루(拱潮樓)

 

 

공조루(拱潮樓) 현판

 

 

용이 그려져 있는 공조루 아치문 천정

 

 

공조루(拱潮樓) 아치문에본 풍광

 

 

덕진진(德津鎭) 공조루(拱潮樓) 전경

 

덕진진(德津鎭)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며 덕진진은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이다

 

남장포대(南將砲臺)

 

덕진진에 소속된 강화 8포대의 하나로 건립 당시에는 15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반달 모양의 요새로 축조하였다. 강화 해안의 진지 중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곳으로, 고종 8년(1971) 신미양요가 일어났을 때는 미국의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남장포대 표지판

 

 

남장포대

 

 

남장포대

 

 

대포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던 포대였지만, 당시의 칭열한 전투로 성첩과 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어 다시 복원된 상태이다. 15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 7문이 남아 있다.

 

남장포대

 

 

남장포대

 

 

덕진돈대로 올라갑니다.

 

 

탱자나무에 핀 상고대

 

 

 덕진돈대 아래에 위치한 덕진진 경고비

 

 

강화군 향토유적 제9호 _ 덕진진 경고비(德津鎭 警告碑)

 

덕진진 남쪽 끝 덕진돈대 앞에 있으며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친첨사가 건립되었고 규모는 147cm, 폭 54.5cm, 두께 28cm이다.

비에는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課)"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는 뜻으로 쇄국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경고비 우측에는 탄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덕진돈대(德津墩帶)

 

덕진진에 소속된 2개의 돈대 중 하나의 광성보와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하였다. 또한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국의 함대와 이틀에 걸친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덕진돈대 표지판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에서 초지진 방향으로 바라본 해안 풍광

 

 

강화 해안의 풍광

 

 

강화 해안의 풍광

 

 

덕진돈대에서 바라본 남장포대

 

 

덕진돈대에서 바라본 김포 덕포진

 

 

누구의 발자국일까?

 

 

휴게소 풍광

 

 

광성보방향으로 해안 풍경

 

 

덕진진(德津鎭) 공조루(拱潮樓) 전경

 

2022.02.02.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강화 덕진진

글 문화재청, 안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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