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92호_김포 덕포진

기리여원 2022. 2. 9. 10:28

사적 제292호 _ 김포 덕포진 (金浦 德浦鎭)

 

면   적 : 48,829㎡

지정일 : 1981.09.25

소재지 :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103-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후기(선조朝)

 

조선시대 진영으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였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현종 7년(1666)에 강화에 포함되었다.

 

높직한 평지에 세운 포대인 돈대와 대포를 쏘는 포대, 그리고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는 파수청이 있다. 돈대는 중요한 전략지에 있어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김포 덕포진 표지판

 

 

김포 덕포진 표지석

 

 

김포 덕포진 입구 전경

 

 

덕포진 안내도

 

덕포진 연혁(德浦鎭 沿革)

 

덕포진은 사적 제292호로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어구인 손돌항에 천협의 요새를 이용한 군사적 요충지로써, 임진왜란의 쓰라린 경험을 겪은 조선 선조때 창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사상으로 강화 통어영, 행정상으로는 통진에 속하였으며, 광무 3년(1899년)에 편집된 김포읍지 및 지도성책에 따르면 1876년 봄 손돌항 포대15기를 건립하여 국토방어 시설을 갖추게 하였던 것입니다.

1980년 발굴 작업 및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당시 발굴된 중, 소포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문, 덕포진 전시관에 2문, 전쟁기념관에 1문, 독립기념관에 1문을 보관중입니다.

 

덕포진 전시관(德浦鎭 展示館)

 

덕포진전시관에는 중포와 소포의 실물을 보실 수 있으며, 덕포진 포대 전시상황 및 포대모형도 등도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조헌전서나 손돌의 전설전자북, 우저서원, 홀기등의 유물과 통일신라시대(단경호, 양이부소호), 조선시대(백자동자상, 백자표 형병, 백자대접, 백자장군)의 유물들과 수안산성 동성산성에서 출토된 기와, 청동제말, 석기, 석촉, 니탄층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덕포진 포대 발굴현황에 대한 영상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덕포진 포대 입구

 

덕포진 포대(德浦鎭 砲臺)

 

덕포진 포대는 총 15포대가 발견되었으며 그 지역을 약물터를 <가>포대지역, 원둘터를 <나>포대지역, 굽도리를<다>포대지역으로 설정하였으며 <가>포대는 7개 포대로 강화 남장포대를 <나>포대는 강화 초지진을, <다>포대는 초지진과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덕포진 '가' 포대

 

가포대(砲臺 : 약물터)는 총 7개의 포대로 이우어져 있으며,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1980년 발굴 조사 당시 중포(中砲) 2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1문은 고전식 포가(砲架 : 포 받침대)에 걸려 있는 채로 발굴되었다. 각 포에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포의 무게, 화약의 용량과 함께 고종 11(18745)에 운현궁에서 재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덕포진 '가' 포대

 

 

덕포진 '가' 포대

 

 

덕포진 '가' 포대 전경

 

 

덕포진 '가' 포대에서 바라본 덕진진

 

 

 

▼ '나' 포대입니다

 

덕포진 '나' 포대

 

나포대(원물터)는 총 5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5번째 포대에서 고종 11(1874)에 만들어진 소포(小砲) 2문과 중포(中砲) 1문이 함께 묻혀있는 채로 출토되었다

 

덕포진 '나' 포대

 

 

 

▼ '다' 포대입니다.

 

덕포진 '다' 포대

 

다포대(굽두리)는 총 3개의 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다포대는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는데 발굴 당시 발견된 기와에 근거해 복원한 것이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고종 11(1874)에 만들어진 중포(中砲) 1문이 고정식 포가(砲架 : 포 받침대)에 걸려 있는 채로 발굴되었다.

 

덕포진 '다' 포대

 

 

덕포진 파수청터(德浦鎭 把守聽址)

 

파수청은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이다.

문헌조사에 의하면 사적 내지 건물은 탄약고, 파수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현재 탄약고는 덕포마을에 이전 위치하고 있고, 사적지내에는 파수청만 현존하고 있다.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중심부에 화덕이 위치한다. 발굴당시 동서면에서 석벽으로 둘러 쌓여있었던 것으로 봐서, 출입구는 동서면이 아닌 남북면을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덕포진 파수청터

 

 

손돌목(孫乭項)

손돌목은 인천 앞바다에서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서 강화군 광성보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일컫는다. 이곳은 평상시에는 세곡미를 운반하는 뱃길로 이용되었으며, 전시에는 적을 방어하는 진지로 사용되었다.

손돌목은 고려이래 조선말까지 경제적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곳이었다.
세시풍속에 의하면, 동절기에 속하는 음력 10월 20일 전후해서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부르며, 손돌이 죽은 장소를 손돌목(손돌항)이라고 부른다.

손돌목에는 손돌이라는 뱃사공과 연관시켜 이렇게 부르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전설이 전승되어 있다. 이 손돌목 전설은 김포와 강화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것으로, "손돌목이라는 여울과 관련된 지명 전설이며, 동시에 손돌 풍신 즉 손돌추위 또는 손돌바람의 배경 전설"이기도 한다. 손돌목에는 일제시대까지 손돌의 사당과 묘과 있어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의 손돌묘는 1970년 신안리 김기송씨가 주축이 되어 사적 제292호로 지정된 덕포진 사적지 내의 현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덕포진 손돌묘(德浦鎭 孫乭墓)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뱃사공 손돌의 무덤이다.

 

덕포진 돈대가 위치해 있던 곳

 

 

덕포진 돈대 표지판

 

 

덕포진 돈대에서 바라본 초지대교

 

 

덕포진 돈대에서 바라본 덕진진 

 

 

덕포진 돈대에서 바라본 광성보,  손들목돈대, 광성포대,  용두돈대 

 

 

덕포진 돈대 앞 표지판

 

 

덕포진 돈대에서 바라본 광성보, 용두돈대 

 

 

덕포진 돈대에서 바라본 광성보, 광성포대

 

 

덕포진 둔덕

 

 

덕포진에서 바라본 덕진진 

 

2022.02.06.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김포 덕포진

글 문화재청, 안내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