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북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_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장수굴

기리여원 2022. 9. 24. 10:18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鎭川 沙谷里 磨崖如來立像)

 

수량/면적 : 1rn
지정일 : 1982.12.17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산68-1번지

 

충청북도 진천군 사곡리에 있는 전체 높이 7.5m의 불상으로, 큰 바위 한면을 다듬어 몸 전체를 감싸는 듯한 커다란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겼다. 앞면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보아 원래는 불상을 모시던 나무로 만든 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목에는 3줄로 새긴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왼팔 등에도 촘촘하게 주름이 새겨져 있다. 특징적인 광배와 함께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에서 형식화가 진행되는 고려시대 불상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신라말의 마애불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시대에 만든 것 가운데 하나로 수준있는 작품이다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김덕숭 효자각 우측 산행로로 올라갑니다.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가는 길은 이 길이 최단거리 코스입니다.

거리는 600m이며, 왕복 여유있게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조금 올라가서 만난 진천 사곡리 단석(鎭川 沙谷里 斷石)

 

소재지 :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화랑도는 신라(BC57~935)의 발전에 뒷받침이 될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청소년 단체로 진흥왕 때 조직이 체계화되어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진천 출신의 흥무대왕 김유신이다.

신라의 청소년들은 신라가 팽창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화랑조직을 통하여 명산 · 대천을 찾아 다니며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을 수행하였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에 입문하여 최고의 자리인 국선에 올랐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화랑에 입문하여 수련하던 중 난승(難勝)이라는 도인을 만나 삼국통일의 비책을 받았다고 한다.

이 단석은 커다란 바위를 칼로 쳐서 잘라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김유신이 화랑에 입문한 이후 수련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장수굴(將帥堀)과 인접하여 있어 수련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진천 사곡리 단석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산행로는 안내표지판이 잘 되어 있으며  산행로는 편합니다.

2개의 안내표지판을 지나면 좁은 길이 나옵니다.

 

 

안전난간이 잘 되어 있는  좁은 산행로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과 장수굴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과 장수굴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과 장수굴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과 장수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鎭川 沙谷里 磨崖如來立像)

 

충청북도 진천군 사곡리에 있는 전체 높이 7.5m의 불상으로, 큰 바위 한면을 다듬어 몸 전체를 감싸는 듯한 커다란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겼다. 앞면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보아 원래는 불상을 모시던 나무로 만든 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얼굴은 단아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목에는 3줄로 새긴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왼팔 등에도 촘촘하게 주름이 새겨져 있다. 특징적인 광배와 함께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에서 형식화가 진행되는 고려시대 불상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불상의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은 마치 두려움을 없애주고, 모든 소망을 들어주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변형으로 보인다.

 

 

 

▼장수굴입니다.

 

장수굴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 뒷산인 사자산 중턱 북쪽 벼랑에 있는 자연석굴인 장수굴은 산위에서 내려온 토사로 인하여 많이 매워져 현재의 규모에 이르고 있는데 굴의 입구쪽에는 목조전실을 세울 때 서까래를 놓기위해 판 곳으로 추측되는 몇개의 인공으로 가해진 홈이 파여져있다.

 

굴이 위치한 곳은 매우 깊은 산속이며 옛날에는 맹수가 자주 왕래하고 굴안에는 독충도 많았다고 전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유명한 장수가 이 굴 속에서 수도를 했다 하여 장수굴이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굴옆 바위벽에는 높이 7.5m의 불상이 있는데 얼굴과 폭으 삼도(주름)가 뚜렷하고 귀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신라 통일이 전의 불상으로 보이며 암벽에 그대로 조각되어있어 마애불이라고 불리는데 현재 3.8m정도만 남아있고 빝부분은 밀려 내려온 흙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장수굴 주위 암벽에는 충남 부여의 고란사에 있는 유명한 고란초가 자생하고 불상이 조각된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거대한 조성이 한결 풍치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글 웹투어

 

장수굴

 

 

장수굴

 

*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 무덥습니다. 윗옷이 흠뻑 땀으로 젖었습니다.

 

2022.09.18,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곡리 마애여리입상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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