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북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_신잡 초상, 노은영당, 신잡의 묘소

기리여원 2022. 9. 25. 05:23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_ 신잡 초상 (申磼 肖像)

 

수    량 : 1폭

지정일 : 1977.12.06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곡마을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잡 선생의 초상이다.

 

신잡(1541∼1609) 선생은 이조참판, 형조참판을 지낸 이로,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을 의주까지 호위한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에 봉해지기도 했다.

 

비단 위에 그려 놓은 그림은 가로 90㎝, 세로 167㎝의 크기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시선은 오른쪽을 바라보며, 두 손은 소매 안에서 마주잡고 있다. 사모를 쓰고, 중요의식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두 마리의 학이 그려진 흉배가 표현되어 있다.

 

선생이 57세 되던 선조 40년(1607) 때의 모습을 김이섭이 그린 것으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신잡 초상 표지판

 

 

 

▼노은영당입니다.

 

노은영당(老隱影堂) 전경

 

 

노은영당(老隱影堂)  외삼문(外三門)

 

 

노은영당(老隱影堂)  내삼문(內三門)

 

 

노은영당(老隱影堂)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신잡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독송 신잡(15411609)선생은 1584년 과거에 급제 한 후 이조참판·형조참판을 지냈다.

임진란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2등에 평천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개성유수가 되었다

 

노은영당(老隱影堂) 현판

 

 

노은영당 좌 · 우측면

 

 

신잡(申磼)의  묘에서 바라본 노은영당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입니다.

 

천연기념물 제13호 _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鎭川 老院里 왜가리 繁殖地)

 

왜가리는 우리나라의 백로과 새들 중에서 제일 큰 새로 우리나라 전지역에 걸쳐 번식하는 여름새이며, 일부는 남쪽 지방과 섬 지방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이다. 논·하천·갯벌에서 살며 개구리, 물고기, 뱀 등을 잡아 먹는다.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1970년까지 노원리 보호 지역내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수백 마리의 백로류 및 왜가리가 번식하여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은행나무가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말라 죽어가고 있으며, 5∼6개 둥지의 중대백로만 남아 있고, 왜가리와 백로들은 주변 숲으로 옮겨 살고 있다.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수질 오염으로 인해 왜가리의 먹이가 되는 개구리, 미꾸라지 등이 줄어 수가 감소되었으나, 우리나라 왜가리 번식지를 대표하는 지역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신잡의 묘소 주변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이월면 노원리 노은실 마을 뒤, 수령 1,000년 정도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1962년 12월 3일 이 일대를 왜가리 번식지로 지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나무의 꼭대기 일부가 왜가리의 분비물로 말라 죽어 왜가리들이 인근의 뒷산으로 옮겨 번식하고 있다.

 

 

▼신잡(申磼) 의 묘입니다.

 

신잡(申磼) 의 묘

 

독송(獨松)  신잡(申磼 , 1541~1609)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준(伯俊), 호는 독송(獨松). 주부(主簿) 신말평(申末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어머니는 윤회정(尹懷貞)의 딸이다. 이산해(李山海)의 문인이다.

 

1583(선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지평(持平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판·형조참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비변사당상으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병조참판을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으나, 관내 철산군에 탈옥사건이 발생하여 그 책임으로 파직되었다.

 

1593년 다시 기용되어 밀양부사·형조판서를 거쳐 특진관(特進官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600년에는 호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 겸 세자빈객이 되었다.

 

이어 함경도관찰사·빙고제조(氷庫提調) 등을 역임하고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평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죽은 뒤에 진천에 사당이 세워지고 사액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신잡(申磼) 의 묘

 

신잡의 묘 앞 석조물은 상석, 향로석, 묘비, 장명등, 문인석과 망주석이 좌 우측에 각 1쌍이 위치해 있다.

 

신잡(申磼)과  부인 남원양씨 합장묘

 

 

신잡(申磼)의 묘 앞 상석과 향로석

 

 

신잡(申磼)의 묘비

 

贈領議政平川府院君行輔國崇祿大夫兵曺判書諡忠憲平山申公磼之墓  (증영의정평천부원군행보국숭록대부병조판서시충헌평산신공잡지묘)

配 貞敬夫人南原梁氏合袝 (배 정경부인남원양씨합부)

 

신잡(申磼)의 묘 우측 장명등

 

 

신잡(申磼)의 묘 좌 우측에 1쌍의 문인석과 망주석

 

2022.09.18, 진천군 이월면 노곡마을 노은영당

글 문화재청,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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