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경자(庚子)> _ 조선 1600년
류성룡이 사용했던 대통력
류성룡(柳成龍, 1542~1607년)이 사용했던 대통력이다. 대통력은 1370년(공민왕 19)부터 1654년(효종 4) 시헌력이 도입되기 전까지 사용했던 역서다. 월, 일, 절기 등을 표기한 인쇄본 위에 손수 적은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날씨나 그 날 한 일, 만난 사람등을 기록해 류성룡의 일상을 따라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조 비 의인황후(懿仁王后, 1555~1600년)의 사망,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갔던 강항(姜沆, 1567~1618년)의 귀국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임시로 묶어둔 표지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1545~1598년) 장군의 전사와 관련된 상황을 묘사한 글이 적혀 있다.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경자(庚子)>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경자(庚子)>
대통력 표지에 기록된 이순신의 죽음
이순신은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노량해전은 조선 · 명나라 연합군이 일본을 크게 무찔러 승리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었다. 본 역서 표지에 적은 글에 이순신이 부하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에 임하였다가 전사한 당시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대통력에 남긴 류성룡의 기록 엿보기
1600년 6월
① 5일 병자, 晴 淸風飄然 見府使告日 姜沆自日本來云
갬. 맑은 바람이 나부끼었다. 부사(府使)의 고목(告目)을 보니 강항(姜沆)이 일본에서 왔다고 하였다.
* 강항(1567~1618년)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붙잡혀갔다가 3년 만에 돌아왔다. 귀환 후 일본의 정세와 지리 정보,
포로의 참상 등을 담은 『간양록(看羊錄) 』을 저술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이들이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으며,
그 규모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② 7일 무인, 柰報來 朴遇春書李ㅁ河 許浚介藥品唐扇ㅁㅁ
내(柰)의 소식이 왔다. 박우춘(朴遇春)의 편지, 이ㅁ하(李ㅁ河). 허준(許浚)의 약품(藥品)과 당선(唐扇, 중국 부채)을
소개하였다...
*ㅁ는 판독이 어려운 글자임
* 류성룡이 허준을 통해 약을 전달받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허준(許浚, 1539~1615년)은 조선 중기의 어의(御醫)로 활동하며 임진왜란 때에는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2023.04.27, 국립고궁박물관_과학문화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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