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남도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_남이흥장군묘일원. 충장사

기리여원 2024. 11. 16. 17:05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 _ 남이흥장군묘일원 (南以興將軍墓一圓)

 

면    적 : 3,776㎡

지정일 : 1984.07.26

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충장1길 53-24 (대호지면) 도이리374-2

소유자(소유단체) : 의령남씨 종친회 

 

조선 중기 무신 성은(城隱) 남이흥(1567∼1627) 장군의 묘이다.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장군의 아버지 남유의 묘가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남이흥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아버지가 왜적에게 총을 맞고 죽자, 학업을 포기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전념하여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죽은 후에 충절의 인물로 여겨져 벼슬이 영의정으로 높여졌고 의천부원군으로 받들어졌다.

본래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71년 충남 당진으로 옮겼다. 주변에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충신들에게 세우는 정문(旌門)이 세워져 있고, 장군이 사용하던 500여점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봉분 아랫부분에는 묘를 보호하기 위해 둘레돌이 둘러져 있고, 묘 앞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望柱石)과 아직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모습을 한 용이 화려하게 새겨진 묘비가 있다.

남이흥장군묘일원 표지판

 

남이흥장군묘일원 표지석

 

남이흥장군묘일원

 

남이흥장군 일가 유품이 전시된 모충관(慕忠館)1.2

 

충장공 남이흥 장군 표지판

 

국가민속문화재 제21호 _ 남이흥장군 일가 유품 (南以興將軍 一家 遺品)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 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1차 지정 유물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 1벌과 인조 임금이 하사하였다고 전하는 곤룡포 1점, 그리고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이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유물을 추가로 지정하였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2004. 9. 25. 지정명칭 변경 : '남이흥장군유품'에서 '남이흥장군일가유품'으로 명칭이 변경됨. (2004년 2월 관계 전문가 추가지정조사 실시 결과 지정명칭 변경과 고문서 13점, 영정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세부유물을 추가 지정함.)

남이흥장군 일가 유품 표지판

 

남이흥장군 후손이 살고 관리하는 고택

 

남씨양세충신정려각과 충장사 전경

 

남씨양세충신정려각 (南氏兩世忠臣旌閭閣)

 

정려란 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렸던 것이다.

남씨양세충신정려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 건물로 처마 밑에는 ' 남씨양세충신정려(南氏兩世忠臣旌閭)'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의 북쪽 벽에는 남유, 남이흥 장군의 명정현판이 걸려 있으며, 왼쪽 벽에 정려기가 있다.

 

남이흥 정려는 1627년(인조 5)에 명정**을 받아 1636년(인조 14)에 건립된 것이나, 아버지 남유의 정려는 '신미(辛未)'라는 글자만 확인되고 있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631년(인조 9)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려각의 전면 아래쪽은 돌벽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홍살이 설치되어 있다.

 

* 우진각 지붕 : 건물 사면에 지붕면이 있고 추녀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게 되는 지붕

**명정 :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이름이나 관직을 적은 것

남씨양세충신정려 (南氏兩世忠臣旌閭) 현판

 

남유, 남이흥 장군의 명정현판

 

충장사 솟을문

 

충장자 솟을문 상부에 걸려 있는 충장사(忠壯祠) 현판

 

충장사(忠壯祠) 

 

충장사는 남이흥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1636년에 세워져 1968년 내부보수공사를 하였다. 사당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충장사(忠壯祠) 좌 · 우측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 한 칸 전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안쪽에는 각 칸마다 네 짝의 분합문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 마무리 되었고, 측면에는 큰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분합문 : 한옥의 대청 앞쪽 전체에 드리는 긴 창살문

방풍판 : 바람을 막기 위하여 박공지붕의 양쪽 끝 박공 아래에 붙이는 널판지

남이흥장군묘일원

 

묘소 일원은 2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에는 부실(副室)인 연안 김씨와 후손들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상단에는 왼쪽에 아버지인 남유 장군, 오른쪽에 남이흥 장군의 묘가 있다.

남이흥장군과 부친인 남유장군 묘 전경

 

성은(城隱) 남이흥(1567∼1627)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남이흥(1567∼1627)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묘

 

남이흥장군묘의 석물은 혼유석, 상석, 향로석, 비석, 선영이봉 전말비, 장명등, 문인성 1쌍, 망주석 1쌍이 위치해 있습니다.

남이흥(1567∼1627)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남이흥(1567∼1627) 장군 묘비

 

선영이봉 전말비(先營移奉 顚末碑) 

 

장명등

 

문인석 한쌍

 

망주석 한쌍

 

남이흥장군묘 후경

 

남이흥장군의 아버지 남유의 묘

 

2024.11.11, 남이흥장군묘일원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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