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1671호_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기리여원 2026. 3. 1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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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71호 -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尹舜擧 草書 武夷九曲歌)

 

수   량 : 1점(10폭 병풍)

지정일 : 2010.10.25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17세기 후반소유자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尹舜擧 草書 武夷九曲歌)」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대표작으로 너그러운 짜임과 쾌속한 운필에서 16세기 초서 명필이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서풍과 연계되며, 또 중봉세(中鋒勢)를 유지한 둥그런 운필에서는 양사언도 지향했던 당나라 회소(懷素, 8세기 활동)의 광초(狂草)에도 맥이 닿는다. 이러한 서풍은 17세기 대자 초서풍의 새로운 면모를 이루었고 이후 18세기 초서풍에 상당한 영향을 준 점에서 주목되는 필적이다. 종이바탕도 조선중기 17세기 필적 가운데 가장 큰 예이다.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우측으로부터 5폭 _ 윤순거(尹舜擧, 1596~1668), 조선 17세기, 종이에 먹(紙本水墨)

 

초서로 쓴 무이구곡가

 

중국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는 무이산(武夷山) 아홉 굽이 게곡을 무릉도원의 이상향에 비유한 시로, 조선시대에는 글씨와 그림의 소재로도 널리 애호되었다.

17세기 초서(草書)의 대가로 유명했던 동토(童土) 윤순거 (尹舜擧, 1596~1668) 의 글씨는 빠르고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과 거친 필획의 질감이 잘 드러나며 큰 글씨의 짜임새 있는 구성도 돋보인다. 윤순거는 16세기 초서의 명필인 황기로(黃耆老, 1521~1575이후)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을 계승하면서 활달하고 안정감 있는 초서를 선보여 18세기 이후 글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좌측으로부터 5폭

 

2026.03.07, 국립중앙박물관_서회실 개편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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