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무덤!,
경순왕릉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면 적 : 11,777㎡
지정일 : 1975.06.25
시 대 : 통일신라
소재지 :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번지
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무덤이다.
927년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후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백성이 많은 피해를 입자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겨주고 왕위를 물러난 신라 마지막 왕이다.
무덤의 높이는 약 3m, 지름 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판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돌렸다. 고려시대 왕릉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담장인 곡장이 둘려져 있어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예로서 무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 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다.
신라경순왕릉 입구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안내판
경순왕릉(敬順王陵)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서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는 것으로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마지막 한 구릉의 정상부 쪽에 단독으로 위치하고 있다. 경순왕의 사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던 것을 1747년(조선 영조23)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墓誌石)을 발견함으로써 되찾게 되었다. 따라서 경순왕릉은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재정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례가 행해지고 있다. 경순왕릉 주변에는 1986년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재실 건물과 경순왕릉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가 비각 안에 놓여 있다.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표지판
경순왕(敬順王)
경순왕은 제56대 신라의 마지막 왕(927~935 재위)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다. 신라문성왕의 후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특히,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민심도 신흥 고려로 기울어지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하들과 큰아들 일(鎰)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태자 일은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보냈다고 하여 후일 일명 마의태자라고 불린다.
고려에 나라를 귀부한 경순왕은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食邑)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귀부한 지 43년 후인 978년(고려 경종3년) 세상을 떠났다.
비보(悲報)를 접한 신라 유민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경주에 장례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고려조정에서 '왕의 구(柩)는 백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하여 이 곳 장단부 고량포리 성거산에 왕의 예로 장례를 모셨다.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표지석
100m정도 걸어 가시면 경순왕릉이 보입니다.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경순왕릉
경순왕릉은 경주 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신라의 유일한 왕릉이다. 조선 영조시대에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을 을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재정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례가 행해지고 있다.
경순왕은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경순왕이 원치 않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때는 이미 신라가 망국의 길로 들어선지 오래였다. 경순왕은 결국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청하고, 태조의 딸과 혼인하여 개경(개성)에서 살게 되었다. 978년(고려 경종3년) 경순왕이 승하하자 후손들과 신라의 유민들은 경주에서 장례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고려조정에서 '왕의 구는 백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하여 이곳 장단부 고랑포리 성거산에 모셔지게 되었다.
재실
1986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재실
재실
재실
경순왕릉 추정 비각
경순왕응 주변에는 경순왕릉 추정 신도비라고 전해지는 대리석재의 비석이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원래 고랑포구 주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으로 1976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1748년(영조24) 후손들이 발견한 신도비로 추정하여 1986년 비각을 짓고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비의 마모상태가 심하여 현재 한쪽 면에서만 몇 개의 문자만 판독될 정도여서 내용은 알 수 없다. 비석의 건립연대는 모르지만 비석의 형태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경순왕릉 추정 신도비 (정면)
경순왕릉 추정 신도비 (정면)
경순왕릉 추정 신도비 (정면)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경순왕릉의 격식
경순왕릉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후기 사대부 묘소의 전형적인 격식을 보이고 있으며 왕릉의 강(岡)이 조성되어 있을 뿐 주변의 석물들은 모두 조선 영조때 만든 것이다.
능상은 원형으로 32매의 호석과 장방형의 곡장을 두루고 있으며, 능의 전면에는 2단의 계체석을 갖추고 있다.
상단 계체석 위에는 능상 앞으로 능표와 상석이 놓여져 있다. 중단에는 네 면에 사각 화창(火窓)과 팔각지붕형의 옥개(屋蓋)를 얹은 장명등이 직선상에 넣여져 잇고, 장명등 좌우에는 석양과 망주석이 하나씩 서 있다.
곡장과 호석은 형식과 문양의 형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인 1932년 보수를 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1) 능상(陵上)
왕의 무덤으로 봉분, 산소, 분상이라고도 함.
2) 호석(護石)
능상 주위를 두른 것으로 사대석 또는 병풍석이라고도 하며 봉분침하와 해충침입을 막기도 함
3) 경순왕 능표(陵表)
능표의 전면에는 신라경순왕지능(新羅敬順王之陵)이라는 7자가 기록되어 있고, 후면에는 다음
과 같이 5행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왕(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후당 천성 2년 무자(戊子 928년)에 경애 왕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셨고, 청태 을미년(乙未 935년)에 나라를 고려에 넘겨주셨다. 송 태평흥국 무인년(戊寅 978
년), 즉 고려 경종 3년 4월 4일 세상을 떠나니 시호는 경순이라 하고 왕의 예로 장단 남쪽 고부8리
계좌 방향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지행순덕영모의열(영조의 존호) 성상 23년 정묘년(丁卯 1747년) 월일에 다시세우다.
4) 곡장(曲墻)
능을 보호하기 위해 능 주위로 동서북 세면을 둘러쌓은 담장
5) 장명등(長明燈)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덤 앞에 세움
6) 석양(石羊)
능 주인의 명복을 빌고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을 함.
7) 망주석(望柱石)
먼 곳에서 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표지로서 영혼이 자기의 유택(능)을 찾아오게 하는 안내역
할을 함
신라경순왕지능(新羅敬順王之陵)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능표에는 신라경순왕지능(新羅敬順王之陵) 이라는 7자가 기록되어 있다.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장명등(長明燈)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덤 앞에 세움
망주석(望柱石)
먼 곳에서 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표지로서 영혼이 자기의 유택(능)을 찾아오게 하는 안내 역할을 함
망주석(望柱石)
석양(石羊)
능 주인의 명복을 빌고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을 함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무덤으로 신라왕중 경주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능이다. 원형의 봉분 앞에 있는 능비와 혼유석, 장명등, 석양 1쌍, 망주석 2기는 조선후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사적 제244호 _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출처 문화재청, 연천군청 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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