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_서악서원(2019.09.14)

기리여원 2019. 9. 20. 10:49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면   적 : 3,699㎡

지정일 : 1975.12.3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서악2길 23 (서악동)


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이정(1512∼1571)이 경주부윤이라는 벼슬을 지낼 때 지방 유림과 뜻을 같이하여 명종 18년(1563)에 세운 것이다.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로 세운 것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02년 묘우, 1610년 강당과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인조 원년(1623)에 국가가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서악’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묘우와 교육 장소인 동시에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던 조설헌이라는 강당과, 동재·서재로 유생들의 숙식 장소로 사용하던 시습당과 절차헌,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전사청 그리고 영귀루라는 누각이 조성되어 있다. ‘서악서원’이라는 현판은 당시 명필인 원진해(元振海)가 쓴 것이다.

현재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악서원 (西岳書院) 도동문(道東門)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도동문(道東門)


서악서원 (西岳書院)


서악서원은 조선 명종 때 경주 부윤 이정(1512~1571)이 김유신 장군을 길이 새기고자 건립했는데 당시 지방 유림들의 의견에 따라 설총 ·최치원 선생의 위패도 1563년에 함께 모시게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 때에도 존속했을만큼 유서 깊은 서원입니다. 최근에는 지역 인성교육의 대표 장소로 서원이 부각되면서 신라문화원에서 2009년부터 정비하여 고택숙박은 물론 문화재 활용의 대표적 장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유신

김유신은 595년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15세에 화랑이 된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꿈을 안고 무예와 학문에 매진하여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워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김춘추와 자신이 여동생 문희를 결혼시키고 김춘추가 왕이 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삼국통일을 눈앞에 둔 무열왕이 숨을 겆두자 김유신은 문무왕을 도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그 후 676년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이룩하였어요. 삼국통일의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흥무대왕이라는 높은 벼슬에 추봉되었고 후세에도 그 공을 기리고 있습니다.



설총

설총은 원효대사와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인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설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솜씨도 뛰어났어요.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의 옆에서 나랏일을 도왔어요. 설총은 고대 한국어를 한문으로 표현한 첫 문자체계인 이두를 집대성해서 정리하였고 육경을 일고 새기는 방법을 발명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등 한학의 연구를 발전시키는데 큰공을 세웠어요. 또 한 꽃을 가지고 왕을 일깨워진 이야기 화황계는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실려 있답니다. 그는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신라십현'의 한사람으로 꼽히며,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의 3문장가로 이름을 떨쳐답니다.


최치원

최치원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며,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7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과거시험 빈공과에 합격했어요. 그 후 당나라의 관리가 된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이라는 문장을 써서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지요. 885년 현강왕 때 다시 신라로 돌아와 진성여왕에게 개혁을 위한 '시무10조'를 만들어 올렸어요. 최치원은 시인이자 대유학자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답니다.



서악서원 (西岳書院) 도동문(道東門) 현판



영귀루(詠歸樓)


원생들이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휴식공간


영귀루(詠歸樓)



영귀루(詠歸樓) 좌측



영귀루(詠歸樓) 2층 내부



영귀루(詠歸樓) 현판


영귀루(詠歸樓) : 영귀(詠歸)는 논어 『선진편 』에 나오는 증점(曾點 : 증자의 아버지)가 한 말. '浴乎沂風乎舞雱詠而歸'(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고 싶다)에 근거함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서악서원은 선도산(仙桃山)아래 자리잡고 멀리 동쪽으로 명활산, 앞으로 남산을 바라보고 있어요. 서원 앞으로 넓은 들이 평쳐지고 그 앞으로 형산강의 줄기인 서천의 남에서 북으로 흐러가고 있지요. 서악서원은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전재후당(前齋後堂)의 배치구조를 하고 있어요


*  전학후묘(前學後廟) : 항교 · 서원의 배치법으로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한 것

*  전재후당(前齋後堂) : 동 · 서재가 강당 또는 명륜당 앞에 배치되어 제향공간과 독립적 성향이

                                  강함.


영귀루 2층에서 본 동재



영귀루 2층에서 본 서재



府尹龜巖先生碑閣(부윤구암선생비각)



府尹龜巖先生碑閣(부윤구암선생비각) 현판



尹龜巖先生碑(윤구암선생비)



동재



서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서악서원 (西岳書院) 시습당 좌측면


시습당(時習堂) 좌측 성경재(誠敬齋)


성경재(誠敬齋) : '誠'은 거짓없는 진실됨이요. '敬'은 공경함이니, 곧 '誠은 하늘의 道이며 '敬'은 인

                         간의 道임. 모두 『중용 』에 나옴


시습당(時習堂) 우측 성경재(進修齋)


진수재(進修齋) :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준말로 덕업(德業), 곧 '훌륭한 일을 이루고 학문을

                       닦는다'는 뜻


서악서원 (西岳書院) 편액



서악서원 (西岳書院) 편액



서악성원 시습당(時習堂)


시습당(時習堂) : 시습(時習)은 논어 『학이편 』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워서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

                       서 따온 말로 '기쁘게 배워서 익힌다'는 뜻


시습당(時習堂) 편액






서악서원 내삼문



사당

김유신, 설총, 최치원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사당 좌측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_ 서악서원 (西岳書院)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이후 남은 47개 서원중 남한36개, 북한11개.

남한 36개중 31개 답사, 미답사 5개입니다.


글 문화재청